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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가지 생각

꿈; 두 번째 이야기

 입사 원서를 쓸 때와 쓰고 나서의 불안감은 나의 모든 인간관계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었다. 잦은 부부싸움, 아이들을 향한 언어 폭력, 이웃들과의 불통. 그리고 그런 것들이 종합되어 우울감으로 나타났다. 다행히도 그 불안감 자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일이 이루어졌거나, 내가 뭘 했거나 해서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위로의 대명사인 '시간이 약이다.'거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은 모든 괴로움은 외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과 그 괴롭다는 감정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음을 알게 됐다. 내가 느꼈던 그 불안감이라는 감정도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다. 두렵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겁이 나는 것, 그런 두려움은 한 번 해보고 나면 바로 사라진다. 또 다른 두려움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얻지 못할까 봐 무서운 것이다. 그런 두려움의 경우에는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평생 전전긍긍하게 하는 불행한 노력형 인간이 되게 하거나, 얻으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해서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의 싹을 원천적으로 잘라버리는 포기형 인간이 되게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 번도 해보지 않으면 겁이 나는 걸까? 어째서 얻지 못할까 봐 무서운 것일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 미지의 무엇으로 내가 잘못될까 봐? 내가 그것을 얻지 못하면 내 인생이 잘못될까 봐? 어떤 유형의 두려움이든 바탕은 내가 잘못될까 봐 무서운 것이다. 확장해보자면, 이 세상이 내 편이 아닐까 봐 무서운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서는 불안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사랑결핍;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하며, 이 욕구가 결핍되었을 때 불안을 느낀다.
  2. 속물근성;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보는 것에서 기인하는데, 현재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자신의 본질적 가치와 차이가 나는 경우 그 사회적 지위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불안을 느끼게 한다.
  3. 기대; 높은 기대가 불안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이 높은 기대를 하게 된 데에는 물질적 진보, 민주 혁명, 매스미디어 등의 영향이 있어 왔다.
  4. 능력주의; 낮은 사회적 지위, 즉 가난은 순전히 개인적인 무능을 반증한다는 사회적 관념이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나면서 가난은 수치심을 불러오기 때문에 근대 이후의 사람들은 가난할까 봐 불안을 느낀다.   
  5. 불확실성: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용관계에서 피고용인의 입장에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고용주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되므로 피고용인은 그저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그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불안을 느낀다 (*1).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위 다섯가지 불안의 원인을 감정을 기준으로 재구분하자면 사랑과 두려움으로 취합해볼 수 있겠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불안한 걸까?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내 인생이 잘못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왜 내가 잘못될까 봐 걱정하게 되었을까? 김윤아의 노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처럼 내 마음은 단꿈에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들었다. 나도 모르게 뉴질랜드에 오고 나서 비자 기간 내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이민 실패자가 되어 불명예스러운 한국행을 하게 된다는 식의 세상의 색안경을 끼고 살고 있었다. 기댈 곳 없는 내 마음은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워서 불안한거라면 오히려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찼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부모가 되어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다시 보고 주인공 빌리의 아버지가 사실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두려움을 걷어내자 결국 사랑이 남았다는 감상평을 적은 후였다. 다음과 같이 이 세상과 나의 관계를 가정하고,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기로 했다.

 

가정: 이 세상은 내 편이다. 이 세상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잘못될 리 없다.

 

그림 1

   

그리고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때 각각 미래에 어떤 결과로 향할 수 있는지 화살표로 표시해보고, 각 선택지들에는 내 감정 지수 (마음이 편안한 척도를 백분위로 표시)를 매겨 보기로 했다.

 

그림 2

 놀랍게도 지금 어떤 선택을 하든 미래의 어떤 상황들로도 연결되는 것이 가능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현재의 나의 불안을 없애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미래에 어떤 상황에 놓이든 나의 감정 지수는 모두 동일하게 높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든 잘못될 리 없었다. 그 결과 1, 2, 3의 선택지들 중에서 감정 지수가 가장 높은 '3.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보기'를 선택해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주부가 되어보기로 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불안의 원인 파악에 이어 해법들도 제시해주고 있다.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내가 당장 개인적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3). 벌써 나이가 마흔이라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막연한 꿈이나 너무 허황된 꿈이라고 여겨질까 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꿈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당당하게 말해보기로 했다. 머릿속에만 있던 꿈들을 마인드 맵으로 정리하고 눈으로 보니 한결 뚜렷해졌다. 어디가 내 길인가 어디 한 번 가보자.

 

그림 3 (*3)

 

 

 

(*1) 또한 저자는 '운'을 불확실성의 카테고리에 포함하여 기술하였는데 내 생각과는 사뭇 달라 요약을 생략한다.

      차라리 능력주의 단락에 포함하여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 이 기회에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을 정리하여 그 것만을 주제로 써봐도 좋을 것 같다. 

(*3) XMind 앱으로 그려봤는데 첫 사용인지라 서툴렀는데 나중에 다시 예쁘게 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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