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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가지 생각

You've got a friend in me.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려서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 영화로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짬짬이 보고 있는데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아이들의 특성상 한 영화를 한번만 보지 않기 때문에 덩달아 서너 번씩 보기도 하는데 그냥 유치하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아주 근본적인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너무도 당연해서 잊고 있었던 근간을 다시 마주한 느낌이랄까? 영화를 본 순서대로 각 애니메이션에 담긴 매우 뚜렷하고도 단순한 철학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아래의 영화들 모두 어마어마한 흥행작으로 어린이들도 물론 좋아할 것임에 틀림없지만 초심을 잃은 분들이라거나 뒤늦은 사춘기로 마음이 약간이라도 싱숭생숭해진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다시 한 번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그러다 길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1. 겨울왕국 1 (Frozen 1), 디즈니 제작, 2013년 개봉

    파워풀하기도 하고 위트 있는 사운드 트랙은 물론 왕자와의 키스가 저주를 풀어줄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자매애를 그려낸 것은 가히 흥행에 대성공할 만했다. 나도 두 가지면에서 모두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 안에 깔린 철학이었다. 엘사의 괴이한 능력을 단점이라고 치환한다면, 엘사는 단점을 남들에게 들킬까 봐 숨기며 살고 있었다. 그 숨겨 온 시간들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엘사에게도, 안나에게도, 그들의 부모에게도 고통이었다. 비로소 그 단점을 드러내고 엘사가 엘사다워졌을 때 모두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엘사가 엘사다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이었다. 나 역시 엘사와 같이 내 결점을 감추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아무리 결점 투성이 나라고 하더라도 나다운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을 일깨워 준 영화였다.   

 

2. 겨울왕국 2 (Frozen 2), 디즈니 제작, 2019년 개봉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뉴질랜드에서 극장에 갔다. 겨울왕국 2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 모두 겨울왕국 1을 너무도 좋아했기에 겨울왕국 2의 개봉 소식에 설렜다. 극장에서 들은 'Into the unknown'의 강렬한 사운드에 전율을 느꼈다. 크리스토프가 숲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어린아이들에 게도 우스운 장면이었나 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여기저기서 후기들이 들려왔다. 겨울왕국 1과의 비교로 떠들썩했다. 아이들과 나는 극장에 다녀오고 한 달이 지나도록 영화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메시지가 점점 명확하게 보였다. 그것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겁도 나고 확신이 없더라도 내 마음을 믿고 용기 내어 나아가 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올라프가 자꾸만 얘기했던 '물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지금까지도 곱씹고 있다.     

 

3. 토이스토리 1 (Toy Story 1), 픽사 제작, 1995년 개봉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을 봤는지 셀 수도 없는 영화다. 나는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뒤편들을 더 좋아하지만 이 편에서는 버즈 라이트 이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 온 장난감 버즈는 자신이 다른 장난감들과 같이 장난감이란 사실을 모른다. 자신이 진짜 우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자신이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충격에 빠지지만 가짜인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자각하고 인정하게 된다. 나는 진짜 나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버즈를 보면서 어느 나가 진짜냐, 가짜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나도 그냥 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4. 토이스토리 2 (Toy Story 2), 픽사 제작, 1999년 개봉   

      제시의 추억이 담긴 노래가 계속 맴돌았다. 자신의 존재감, 존재의 가치를 향한 제시의 몸부림이 눈물겨웠다. 그것은 내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하고 자문하고 답을 구하려 애쓰는 것과 같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니, 적어도 사람은 오직 사랑받을 때만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존재는 사랑으로 증명된다. 그러니 미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자. 

 

5. 토이스토리 3 (Toy Story 3), 픽사 제작, 2010년 개봉  

      토이스토리 2에 이어 역시 사랑받는 것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인들은 그들이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핑크 곰 라쏘처럼 말이다. 앤디가 보니에게 우디를 주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랑은 중요하지만 불변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사랑은 변치 않지 않는다. 사랑의 끝은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알린다. 슬프지만 아름답다.

 

6. 토이스토리 4 (Toy Story 4), 픽사 제작, 2019년 개봉  

       모든 캐릭터들이 다 나인 것만 같아 감성이 어찌나 마구마구 자극되었던지 얘기가 아마도 길어질 것 같다. 또 9년 만의 후속작이 개봉된다는 소식에 온 가족이 극장으로 총출동했다. 상영일에 앞서 전작들을 다시 봤다. 영화 개봉에 걸린 세월이 '9년'이라는 말에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토이스토리와 내 마음이 함께 자라고 있는 기분이랄까?

 

 버즈 라이트 이어는 우디가 마음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 한 이후 마음의 소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버즈가 나와 동일시되었다. 나에게 진짜 나가 있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의 중요성을 알고 난 후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는 내가 투영되어 보였다. 에고의 목소리가 겹쳐져 도대체 어느 것이 마음의 소리인지 모르겠는 혼돈의 상태의 나. 영화의 거의 끝부분에 가서야 진짜 딱 맞아떨어지는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 버즈처럼 나도 언젠가 또렷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야 말겠다.

 

 새로 탄생한 캐릭터 포키. 보니가 쓰레기 통에서 찾아낸 버려진 것들로 만든 장난감이지만 애착이라는 중차대한 의미가 부여된다. 포키는 자신의 그런 고귀함은 모른 채 자꾸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려고만 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생각났달까? 사실 알고 보면 나도 귀한 존재인데 그걸 나만 모르고 나를 학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화두를 내게 던진 것 같았다.   

 

 다른 새로운 캐릭터인 개비 역시 내게는 예사롭지 않았다. 개비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개비의 집착과 외로움이 사랑의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되도록이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사랑은 고정불변이 아니어서 한 사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만 새로운 사랑의 희망이 다른 곳으로부터 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반전처럼 느껴질 정도로 보핍의 재등장은 놀라웠다. 개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 듯, 보핍은 독립을 선언하고 소속될 주인을 찾지 않고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래, 나의 존재가 꼭 누군가로부터 비롯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나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나의 우디. 엔딩에서 우디가 새 출발을 선택했을 때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그 출발을 응원하고 싶었다. 나에게 우디는 더 이상 그냥 목각 인형이 아니었다. 공감해주고 응원해주고 싶은 인간 동지이다. 우디가 어디에 있든 잘 살았으면 좋겠다.

 

7. 쿵푸팬더 1 (Kung Fu Panda 1), 드림웍스 제작, 2008년 개봉

    팬더 포도 타이렁도 용문서 안에 대단한 비법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용문서는 빈 종이였다. 또 포는 자신의 거위 아빠가 예상과 달리 국수 만드는 비법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비법은 없었다. 그저 자신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용의 전사가 된 포가 자신 없어할 때 거북이 우그웨이 사부가 포에게 말했다. 먹을 것만 좋아하고 쿵푸를 전혀 할 줄 몰랐던 포는 과거의 포이고, 용의 전사가 되어 타이렁을 물리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과거와 미래를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포가 용의 전사가 된 것은 물론 그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내 귓가에 맴돌고 있다. 

 

8. 쿵푸팬더 2 (Kung Fu Panda 2), 드림웍스 제작, 2011년 개봉

    용의 전사를 활약 중인 포는 어느 날 전투의 현장에서 한 심볼을 보고 기억 너머에 있던 아기 때의 일이 자꾸 아른거린다. 곧장 거위 아빠에게로 달려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게 되고, 거위 아빠는 자신이 포의 친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포가 알게 된 것에 놀란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물은 포에게 거위 아빠는 무 대신 포가 오게 된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 날 나는 무를 뺀 수프를 만들게 되었고, 너를 입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날부터 내 수프와 인생은 더 달콤해졌다. 넌 내 아들이다."

내 정체성은 어디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포의 비극적인 과거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공자 셴과 싸우는 도중 과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포에게 예언가 염소 할머니가 이 정체성의 범위에 대한 답을 주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가 뿐 아니라 지금 무엇을 선택하는가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도 포함된다고 했다. 그리고 전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포는 거위 아빠의 아들이기도 한 것으로 했다.  

 

(쿵푸팬더 3는 어쩐 일인지 넷플릭스 뉴질랜드에는 없다. 대신 「Kung Fu Panda + Secret of the Furious Five」가 있는데 각 무적의 5인방의 과거가 나온다. 특히 타이그리스의 과거가 인상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마스터 시푸를 보아오며 자라 마스터 시푸처럼 되고 싶어 했던 어린 타이그리스는 '나 다움'에 대해 깨닫고 나서야 마침내 마스터 시푸의 인정을 받게 된다. 내가 나 다울 때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강하다는 진리와 다시 조우했다.)  

 

 

9. 트롤; 월드 투어 (Trolls World Tour)  , 드림웍스 제작, 2020년 개봉

       트롤 1은 보지 않았지만 'Can't stop the feeling' 이라든가 캐릭터들의 외모는 친숙했다. 트롤이라는 존재가 익숙하지도 않았고 유치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트롤의 두 번째 영화 월드 투어 편에서 이 세계를 음악의 세계로 축소하여 비유한 것에 놀랍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락 장르 하나로 통합하려는 락 여왕 바브의 음모에 주인공 파피가 맞서 싸운다는 큰 줄기에서 파피와 다른 등장인물끼리도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다르다는 건 중요하지 않지 않아 (즉, 다르다는 것은 중요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이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상은 다양성 그 자체이다. 남편과 다르다는 이유로 참 많이도 부딪히면서 살아왔다.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게 다 달라서 생기는 갈등 아니겠는가. 남편이 나와 똑같다면, 나와 남편이 둘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우습게도 이 영화를 본 이후 남편과의 싸움이 줄어들었다.

 

 

10. 크루즈 패밀리 2 (The Croods; A New Age)  , 드림웍스 제작, 2021년 개봉(뉴질랜드)

        이 영화도 원조 1편을 보지 못한 채로 극장에 갔다. 아이들 여름 방학이기도 했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본 영화라 내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선택한 영화도 아니었다. 정보가 없어서 전혀 기대가 없었는데 영화가 참 묘했다. 예상치도 못하게 영화는 가족 구성원 간의 거리 (사회적 거리와 반대되는 개념이랄까?)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크루즈 패밀리의 거리는 서로 밀착되어 있을 정도로 가까웠고, 배터맨 패밀리의 거리는 크루즈 패밀리에 비하면 멀다면 멀다고 할 수 있다. 배터맨에게는 아내가 모르는 비밀이 몇 개나 있었으므로. 지금 우리 가족은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는 것을 핑계로 거리가 상당히 가깝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벌어질 거리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의 독립을 돕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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