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지식 시리즈 24
만프레트 마이 글/ 아메바피쉬 그림/ 박민수 옮김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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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워낙 비룡소의 책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중에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주고 싶어서 큰 아이가 태어난 해에 미리 사두었던 즐거운 지식 시리즈 일부이다. 「학교는 왜 가야 하나요?」 책은 큰 아이가 요즘 읽고 있다. 아이들에게 추천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읽어봐야 도리일 것 같아 한 권씩 읽어보고 있는 중이다. 그중 오늘 리뷰할 책은 「이것이 완전한 국가다」이다. 저 시리즈들 중 특히 이 책을 리뷰하는 이유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이후로 한창 고민 중인 사람, 세계, 인류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철학가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말이다. 철학 지식이 짧은 나 같은 사람에게 눈높이가 맞춰진 책이었다. 또한 삽입된 그림의 화풍이 매우 낯익어서 아이들과 상의해보니 아이들이 환호하며 경쟁하듯이 책장으로 달려가 책 한 권을 꺼내 보였다. 이쯤 되니 책 읽는 재미가 한층 더해졌다.
2
이 책은 12명의 철학자들 (더 좁은 의미에서는 정치 사상가)이 각기 꿈꿔온 유토피아를 소개하고 있다. 이 12명의 철학자들이 각자의 유토피아를 '소설'의 형태로 기술했다는 점이 몹시 흥미로웠다. 언젠가 원본 소설을 구해 읽어보고 싶었다. 추정컨대 대체로 이들 소설의 분위기는 공산주의와 공상과학의 복합체일 것 같다. 플라톤은 무려 2천 년 전에 자신이 생각하는 완전한 국가를 「국가」라는 책에서 기술하고 있고, 토마스 모어는 1400년대~1500년대에 「유토피아」라는 책에서 '유토피아'라는 섬을 통해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그의 주관적인 관점을 드러냈다. 그때부터 '유토피아'라는 단어가 이상적인 국가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의 소설들은 어떤 이름 모를 외딴 섬이거나 특정 미래 시점의 어느 도시이거나 어떤 다른 행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루이-세바스티엥 메르시에는 2440년의 파리를, 올더스 헉슬리는 포드 탄생 후 632년, 그러니까 2540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속 주인공은 운전을 하던 도중 다른 행성인지, 다른 세상인지 모를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고 그곳에서 유토피아를 목격한다.
이들의 유토피아 중 인상 깊었던 부분들만 소개해보고자 한다.
3
플라톤의 「국가」를 제외한 이들 소설 속의 유토피아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이다. 플라톤은 잘 분업화된 시장 경제 체제 하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가 조직이 이상적이며, 국가를 잘 운영하기 위해 지도자는 철학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경제 체제라고 하면서도 플라톤은 유토피아를 다음과 같은 계급사회로 묘사하고 있다.
- 1계급: 통치자 계급 (수호자 계급에서 양육된 인재들 중 가능성이 있는 그룹에 한하여 철학을 중심으로 한 다른 학 문들을 익힌 후 각종 테스트에 통과한 경우에 한하여 통치자 계급으로 올라오게 된다.)
- 2계급: 수호자 계급 (여기에서 통치자 계급이 양육되므로 문학과 음악이 중심이 된 교육이 강조되는 계급이다.)
- 3계급: 보통 사람 (국가의 핵심 계급인 1계급과 3계급을 부양할 책임이 있는 계급이다.)
1계급과 2계급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결혼을 할 수 없었고, 가족을 만들 수도 없었다. 오직 국가가 개입된 채 3계급으로부터 출생함과 동시에 어느 계급으로 갈지 정해지고 가정이 아닌 공공에서 공공 양육된다는 파격적인 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플라톤은 이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인 정의로운 국가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1장부터 유토피아가 파시즘의 모양이라니 어쩐지 으스스했는데 뒤의 챕터들 속의 다른 철학자들의 유토피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의도가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제시한 이상이었던 건지, 실상은 현실 옹호를 위한 것이었던 건지 지금도 헷갈린다.
4
토마스 모어는 여행을 많이 한 포르투갈 사람이 영국의 제도를 비판하면서 5년간 살았던 '유토피아'라는 어느 알려지지 않은 섬의 제도에 대해 모어 자신에게 소개하는 형태로써 모어는 소설 속에서 그 포르투갈 사람과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유토피아' 섬의 모습은 플라톤의 '국가'의 기본 골조와 비슷하다. 다만 플라톤이 1계급과 2계급 설명에 집중한 나머지 3계급에 대한 언급을 놓쳤다면, 토마스 모어는 3계급에 대한 제도 설명을 충분히 많이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여자들이 하는 일과 남자들이 하는 일을 국가가 나누어 정하였고, 일일 노동 시간도 6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루 6시간만 일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루 6시간 미만 일을 할 때에 노동자의 행복을 해치지 않을 수 있어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며, 쓸데없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면 일일 6시간 노동으로도 모든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종교에는 관대하나 결혼에는 엄격하여 국가가 개입한다. 폭력과 전쟁을 혐오하고 정의와 평등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긴다는 포르투갈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난 소설 속의 모어 자신은 영국에서는 일어나리라 기대하기 힘든 것들이 유토피아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결국 유토피아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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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유토피아를 실제로 실행에 옮긴 철학자도 있다. 에티엔 카베라는 철학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왕과 대립하여 영국으로 망명했고, 그곳에서도 정치적으로 탄압받던 중 유토피아 '아카리카'를 직접 건설하기 위해 1848년 150명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들의 유토피아는 평등, 공동 소유, 민주주의 원칙이 기본 골조였다. 그러나 에티엔 카베의 이상대로 흘러가지 않자 독재자처럼 굴기 시작했고, 결국 다수결에 의해 그의 유토피아에서 추방된다. 그는 추방된 직후 1856년 사망하게 되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토피아 마을은 실패로 끝이 나고 만다. 에티엔 카베의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 사회주의가 독재 통치로 흘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것은 예고된 것일까? 각자가 품은 이상이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유토피아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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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는 여러 작품을 통해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는데 독특한 점은 모두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 중 「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소설은 주인공은 우주 어딘가로 공간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다른 경로로 온 다른 두 명의 지구인들을 만난다. 세 지구인들은 방금 도착한 유토피아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고 한 유토피아인을 만나 유토피아의 국가 통치에 대해 설전을 벌인다. 그렇게 알게 된 유토피아의 원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1) 개인 영역의 불가침성, (2) 이동의 자유, (3) 제한 없는 지식, (4) 진실, (5) 토론과 비판의 자유. 그 후 지구인들에 의해 유토피아에 전염병이 퍼져 지구인들은 감금되어 격리되면서 주인공은 그곳이 진정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진짜 유토피아라고 여겼던 마음에 혼란을 느낀다. 주인공은 극적으로 지구로의 귀환에 성공한다. 줄거리만 읽어도 정말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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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최근의 철학자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유토피아는 일명 '에코토피아'다. 그는 미국의 환경 운동가이며, 1974년 「에코토피아」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그 소설 속의 유토피아는 이렇다. 대기 오염과 소음 공해를 이유로 항공기 운항은 전면 금지되었다. 총기 사유도 금지되었다. 분리수거와 재활용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친환경 건축 자재의 사용이 원칙이다. 택시는 전기로 운행되며, 화장지는 재생된 것이라 까칠하다. 농장의 모든 동물들은 갇혀 있지 아니하고, 쓰레기를 버려질 물건들은 애초에 생산조차 하지 않는다.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기업의 소유자들이다. 유전자 복제는 불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유토피아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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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인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에 대한 대응과 뉴질랜드 정부의 정책이 판이하게 달랐고, 그것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손이 닿았나 보다. 「이것이 완전한 국가다」는 철학자들의 유토피아를 맛보기 할 수 있었던 일종의 편집샵 같은 책이었다. 나는 이 중에 몇 권은 원본으로 읽어보기로 작정하였다. 또 다른 지적 호기심의 발동이라는 큰 수확을 얻은 독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안내된 유토피아들이 나오는 책들을 열거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책 제목 | 지은이 | 발간연도 |
국가 | 플라톤 | BC 375 |
가장 좋은 국가 통치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한 진실이 담긴 황금 같은 책자 |
토마스 모어 | 1516 |
태양의 나라 | 톰마소 캄파넬라 | 1602 |
크리스티아노폴리스-기독교 국가에 대한 설명 | 요한 발렌틴 안드레 | 1619 |
새로운 아틀란티스 | 프랜시스 베이컨 | 1626 (유작, 미완성) |
서기 2440년 | 루이-세바스티엥 메르시에 | 1771 |
아카리아 여행 | 에티엔 카베 | 1839 |
공산당 선언 |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
1848 |
신과 같은 인간 | 허버트 조지 웰스 | 1923 |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 1932 |
에코토피아 | 어니스트 칼렌바크 | 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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