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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유튜브에 빠져 사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했나 보다. 즐겨 보는 동영상의 주제가 무척 다양하지만 크게 분류해보자면 연예인이건 일반인이건 가리지 않고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유튜브를 많이 보고 있다. 더는 안 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안 보기가 잘 안 되는 내가 또 싫어지고 있었다. 2020년부터 그러지 않기로 해놓고서는... 그러다 그건 필연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들었다.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의 일상과 취향을 엿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나의 그 특성이 혹시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합리화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유튜브가 성행하기 전에는 길을 걷다가 혹은 차 안에서 지나쳐 가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좋았다. 특히 밤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 단지를 지나갈 때는 불 켜진 집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을지 궁금해 했고, 불이 꺼져있는 집의 사람들은 무슨 사연으로 한밤 중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까 하고 상상하는 즐거움은 어디 비할 데가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사건이 주가 되는 반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 특히 주인공의 행동은 물론이고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래서 소설을 읽었을 때 주인공으로의 감정이입이 훨씬 잘 되었나 보다. 한 사람의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을 원 없이 들을 수 있는 에세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아마도 나는 사람들의 일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렇게 소설과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과 건물 안의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유튜브로 옮겨간 것이 분명하다.
유튜브 세상 속에도 엿볼 수 있는 삶들이 무궁무진하다. 심지어 나는 경제 유튜브도 재밌다. 재테크를 배울 요량이 아니라 세계의 경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전 세계인들이 대체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충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나도 모르게 소재들을 모으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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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의 화두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것을 잊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자리는 (1) 해야하는 것과 (2)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3) 잘하는 것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을 깨달은 날은 아이들과 놀이터에 갔을 때였다. 큰 아이는 철봉에서 배로 돌기 연습에 한창이었다. 왕년에 철봉 좀 했던 나는 몸소 시범을 보였다. 그것을 본 큰 아이는 하고 싶어 안달이 남과 동시에 잘하지 못하는 것에 짜증이 났다. 그런 큰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거 할래? 잘 하는 거 할래? 구름사다리는 잘하니까 그럼 구름사다리만 할까?"
큰 아이는 결국 그날 철봉 배로 돌기를 해내고 말았다. 다음에 다시 놀이터에 갔을 때는 더 높은 철봉에서의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인간은 잘하는 것에는 흥미를 곧 잃고 만다는 사실과 해보지 않아서 잘 못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해내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록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잘 못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재미를 준다면 나에겐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먹고 살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나는 직업에 있어서도 이 룰을 적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선언하고 나니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하는 일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섰다. 우선 과거에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처음엔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아 멈칫할 때가 많았는데 이내 손이 빨라지면서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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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할 일을 찾기 위해 이 좋았던 순간들을 분석해봤다.
- 질문: 좋았던 순간들은 왜 좋았던 것일까? 답 : 왜냐고? 답을 하기 어렵다. 질문이 잘못된 것 같아 질문을 바꿨다.
- 질문: 좋았던 순간 기분은 어땠을까? 답 : 가슴이 뛰었다.
- 질문: 위의 순간들 중 직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답 : '글쓰기'가 눈에 띄었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할 생각을 하니 또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잘 하지도 못하는 걸 가지고 어떻게 돈벌이를 하겠어하고 말이다. 잘하는 일 말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직업으로 삼기로 한 작업이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나에게 용기를 줄 만한 생각들을 모았다.
- 질문: 과거에 했던 일은 잘 했을까? 답 : 누가 봐도 유능하다는 소릴 들을 만큼은 아니었는데도 10년간 일했다.
- 질문: 과거의 그 일은 당초 어떻게 선택했나? 잘할 거라고 생각했나? 답 :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 공부가 어려웠는데도 재미가 있었다.
- 질문: '글쓰기'를 떠올리면 가슴이 뛰는가? 답: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이런 자문자답을 통해 나는 용기를 내어 글을 써 보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재밌다.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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