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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살 땐 옷방이 따로 있었다. 그 옷방은 남편과 함께 쓰는 방이었지만 내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일 몇 개씩 배달되던 택배 상자들이 여기저기. 뜯지도 않은 옷들이 여기저기. 화장품, 가방, 모자, 머플러, 타이즈, 샴푸 등등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커다란 신발장에 켜켜이 쌓여 있던 신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 나고부터는 더 가관이었다. 앞뒤 베란다 가득 육아 용품이 쌓여 있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몰라서 같은 것을 사고 또 사기도 일쑤였다. 그만큼 내 씀씀이는 수입과 비등해서 월급이 들어오는 날 바로 잔고가 영이 되는 기적을 매달 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책 한 권을 빌려줬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라는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이었다. 그 책의 저자는 심플하게 살면 분산된 에너지가 내 안으로 집중되고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편견과 구속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 에너지가 분산된 상태인가? 그렇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그렇다. 책을 다 읽은 어느 날, 미니멀리즘이라는 걸 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곧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옷입기에 관심이 많다. 이것과 저것을 매치하는 아이디어가 많다. 나는 버리는 것을 매우 아까워한다. 자원 낭비일 뿐 아니라 지구에게 미안하다. 미니멀리즘으로 가는 과정 중에 나도 모르고 있던 옷에 대한 열정과 지구를 걱정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1차 미니멀리즘에 걸린 시간이 한 달이나 걸렸던 이유는 옷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였는데 정리를 시도할 때마다 처분할까 말까를 두고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이미 처분하기로 결정한 옷들이 도로 옷장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한 달 동안 내 심정을 표현하자면 '처절함'이었다. 버린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내키지가 않아 내가 안 쓰는 것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또 기부한다고 생각하니 이건 남 줄 정도도 못된다고 생각이 드는 낡고 허름한 것들도 꽤 보였기 때문에 정리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해서 옷방의 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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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옷방에 들어갈 때 숨쉬기가 편해졌다. 그 후 나는 옷을 사는 데 돈을 쓰지 않게 되었다. 또 정리해야 하는 고통에 놓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후 나는 퇴사를 하였다. 미니멀리즘의 실천이 퇴사로 이어졌다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는데 뉴질랜드에서의 어느 날, 미니멀리스트들의 대다수가 미니멀 라이프에 입문하게 된 후 장기 휴직을 했거나, 해외 일주 여행을 했거나, 퇴사를 했다는 지식채널e의 짧은 영상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내가 퇴사하게 된 계기를 되짚어 보았다. 결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거나,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래 볼 용기가 생긴 것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갑자기 그런 용기가 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단행한 후 더 이상 쓰레기가 될지도 모르는 것들을 사모으느라 피땀 흘려 일해서 번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딱히 자린고비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월급이 남기 시작했다. 입사 이래 처음이었다. 분명 월급은 매년 올랐을 텐데 소비도 따라서 올랐나 보다. 남은 월급으로는 이자비용의 지출을 부르던 대출금을 조금씩 갚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자비용의 감소라는 선순환을 불러왔다. 적은 생활비로도 생활이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남편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월급 외에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남편의 수입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해서 살아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넘쳐 퇴사를 위한 경제적 플랜 짜기에 돌입했다. 퇴사는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던 것과는 달리 막상 경제적으로 퇴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제법 여럿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감으로 빵빵해진 어느 날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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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집엔 옷방이 따로 없고, 책상 방 한 구석에 내 옷을 위한 행거를 두었는데 이렇게 텅 비었다. 자리가 넉넉해서 이렇게 널브러져 있어도 많이 지저분하지 않다. 한 번이라도 입었던 옷은 입었다는 표시를 하기 위함이라는 핑계로 개어 놓지 않고 저렇게 널브러뜨려 놓는다. 퇴사를 부른 미니멀리즘 1차 실행 이후 뉴질랜드로 이주해오면서 짐을 다시 반으로 줄이는 2차 실행을 한 후의 모습이다. 3열짜리 대형 행거와 옷장 하나, 큰 서랍장 하나와 작은 서랍장을 이고 있었던 나로서는 참으로 홀가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행거의 옷들과 서랍장 속의 옷들은 여기에서만 부지런히 입고 모두 처분할 생각이다. 이 외에 이민 가방 만큼 큰 트렁크가 있는데 그 안은 정장들로 꽉 차 있다. 한국 가면 취직해서 입으려고 벌써 치워놨다. 옷을 더 이상 사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옷, 스타일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옷을 내 돈 주고 사지 않아도 그 열망이 충족되었다는 것이다. 옷이 어디선가 들어온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옷들만 남기고 정리한다. 정리할 때의 처절함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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