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만 가지 생각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1

 예부터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 여기지 않았던가? 자기중심이 딱 설 나이라서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한국 나이로는 마흔을 넘겼다. 두 해 넘겼던가? 아무튼 마흔 즈음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흔들린다. 내가 누군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니면 원래 알고 있었는데 뉴질랜드에 온 충격으로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까?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2년은 학업과 가사, 육아를 병행하느라 새로운 환경에의 노출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업을 마치고, 취업에 몇 차례 도전 후 포기해버리고는 내 인생에 대한 방향성과 자신감 모두를 읽은 상태, 나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2020년을 나를 다시 알아가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지금도 나를 알아가기 위해 도움받고 있는 도구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1. 명상: 아직 명상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를 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명상의 효과에 대해서 공부한 것이 있어서 그걸 믿고 계속 해보는 중이다. 어쩌면 요즘 내가 하고 있는 나에게 이로운 모든 행동들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
  2. 일기: 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일기에 포함되는 내용은 내가 원하는 모습 상상하기, 감사하기, 오늘 나를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을 적고 실천한다.
  3. MBTI: 대학 때 학교 심리상담소에 받았던 성격 유형 검사지를 책상 서랍 깊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 내가 진단받은 성격 유형과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는데 위로받는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MBTI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

 혈액형 별 성격, 별자리로 보는 성격 분류와 마찬가지로 MBTI 성격 유형도 과학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과 이분법적인 방법으로는 개인의 특성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 MBTI가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기에 나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MBTI를 이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이상 행동들의 원인들을 그 곳에서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었고, 내 성격은 단점 투성이라고만 여겼었는데 열거된 좋은 점들을 보면서 수용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있어서 나에게는 당연한 것인데 외부에서 바라보고 표현하면 그렇겠구나 하고 수긍이 되었다. 또한 관계 속에서의 내 성격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다. 예를 들면, 내 성격의 이런 부분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이런 작용을 할 수 있고, 또 저런 부분은 부부 관계에서 저런 작용을 할 수 있으며, 자식과의 관계에도 내 성격이 미치는 좋은 영향 또는 나쁜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ISFP형이다. ISFP형의 특징을 열거하면 이렇게나 많다. 하지만 내 성격이 이것 만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성격을 정확하게 표현해줄 언어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중 내 성격이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중 내가 가진 장점이라고 여길만 한 것이 있는지 나를 탐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또한 인정하고 싶지 않던, 혹은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감추고 싶었던 나의 단점을 눈으로 확인하는 솔직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1. 성인군자형, 온화한 예술가형 (동물로 비유하면 양과 같다.)
  2. 겸손하다.
  3. 관찰력이 뛰어다.
  4.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다. (대화 도중에도 계속 타인의 감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집에 오면 지친다.)
  5. 타인 위주로 의사결정을 한다. (관계 속에서 본인 주도가 잘 안된다.)
  6. 배우자를 이해시키기 어렵다. (일종의 박애주의자여서 집 안에서는 생활력이 약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음) 
  7. 남을 잘 도와준다.
  8. 조화를 추구한다.
  9. 자연친화적이다.
  10. 잘 보살피고 챙겨준다.
  11. 말 하기 보다는 듣는 편이다.
  12. 거절을 잘 못한다.
  13. 게으르다.
  14. 지시나 명령을 잘 내리지 못한다.
  15. 말 수가 적다.
  16.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17. 자유를 추구한다.
  18. 타인도 간섭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가 간섭 받는 것도 싫어한다.
  19. 집순이다.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아 에너지 소모가 크므로 집에 있는 것이 편하다고 느끼며 집에 있어도 재밌다.
  20. 연락이 잘 두절된다. (일단 되도록 피하고 싶어한다.)
  21. 자기성찰형이다.
  22. 화를 잘 내지는 않지만 화가 나면 무섭다.
  23.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비도덕적이라거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24. 관망하고 싶어하지 리더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관계 속에서 본인 주도가 잘 안된다.)
  25. 말 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26. 조용하지만 즐거운 느낌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27. 순발력을 이용해 논리적으로 잘 따지지 못해서 집에 와서 후회하는 때가 많다. 
  28. 감각적이다. (예쁜 것을 좋아함)
  29.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한다. (특히 약하고 어린 것에 애정을 쏟는다) 
  30. 감정이입을 잘 해서 드라마나 영화 볼 때 잘 울고, 잘 웃는다.
  31. 칭찬 듣는 것을 좋아하고, 남 칭찬도 잘 해준다.
  32. 칭찬 들은 과목은 그냥 이유 없이 잘 하게 되거나, 칭찬 들은 날은 하루종일 들떠 있다.
  33. 벼락치기에 능하다.
  34. 집중력이 좋아서 주변 정리가 잘 안되어 있어도 집중을 잘한다.
  35. 숲 보다는 나무만 본다.
  36. 잘 맞는 직업: 예술가, 교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수의사

  나는 지나친 '2. 겸손함'으로 인하여 나의 장점을 칭찬해주는 것이 부족했으며, 동시에 끊임 없는 '21. 자기성찰'을 통해 내가 잘못한 점에 대해 무한 반성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단점으로 보이는 부분들도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35. 숲보다는 나무만 본다'라는 성격은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특성 덕분에 내가 평가에 있어서 남들보다 더 관대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해외 취업을 주제로 한 한 시간짜리 특별 강의가 있었는데 그 강의가 끝난 후 그 특강을 기획했던 선생님이 강의에 대한 소감을 물었었다. 나는 그 강의를 통해 사소하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것 두 가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나에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해 주어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평한 반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한 시간이나 투자하여 건질만한 것이 거의 없었던 강의였다고 혹평했다. 그 전의 나는 나무만 본다는 나의 성격을,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3

 어느 날엔가, 유머 게시판에 '낯선 사람들 앞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워지는 유형'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답은 INFP와 ISFP 형이었다. 그 글에 대한 댓글에 '나도 ISFP형인데 안 친한 사람 앞에서는 정수기 쓰는 것도 뚝딱거림', '맞아, 나 알바할 때 맨날 뚝딱뚝딱' 등이 올라왔다. 나는 그 '뚝딱거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번에 알았다. 나 역시 뚝딱이(자연스럽지 못하고 로봇처럼 뚝딱뚝딱거리는 모습을 묘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횡단보도 건널 때 그 건너는 이가 나 뿐일 때마다, 산책하다 저쪽에서 누군가 걸어올 때마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걷는 걸음 박자가 꼬이곤 하는 것이 바보 같아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 글과 댓글을 읽은 후에는 그런 뚝딱이가 나만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나를 그 수 많은 뚝딱이들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니 나를 나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이제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내가 귀엽기까지 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MBTI의 순기능 (MBTI는 이외에도 내 영어 공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영어 공부'를 주제로 하는 다른 글에서 다룰 작정이다.)이다. 나는 MBTI 덕분에 단점이라고 여기던 내 모습들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