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드라마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 남편은 그래도 부부가 같은 취미 하나쯤은 공유해야 한다며 부부 취미로 '드라마 같이 보기'를 하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부부의 유일한 공통 취미가 되었다. 영화 같이 보기보다 드라마 같이 보기가 다음 화를 기다리게 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본 작품 수로 봤을 때 드라마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남편과 드라마 취향도 다르다. 나는 좀비물을 포함한 공포물을 절대 못 보고, 너무 많이 슬픈 것도 못 본다. 한편, 남편은 좀비물을 가장 좋아하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를 가장 싫어한다. 남편이 킹덤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같이 보자고 했으나 킹덤은 단칼에 거절했고,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4회까지 보다가 매회 눈물바다가 되어 중도 포기했다. 내가 태양의 후예와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래서 그런 작품들은 각자 봤다. 다음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같이 보기로 합의되어 정주행을 마친 드라마다.
사조영웅전 (2008)
유치하지만 귀엽고, 조악하지만 뒷부분이 궁금한 독특한 드라마.
용이가 '찡거거' 부르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신혼 때 매일 무비나잇을 기다리던 그때
'한편 더?'라는 남편과 나만의 유행어가 탄생했다.
하루에 3~4편씩 50부를 정주행 하느라 피곤했었지만
부부 공동 취미를 갖게 된 첫 작품이었다.
응답하라 1988
그 인기 많았던 응답하라 시리즈들을 하나도 안 보고 있었다.
남편의 제안으로 1988 편을 보게 되었는데
당시 큰 아이가 어려서 좀처럼 짬을 내기 어려워서
20부 완결하는 데 오래 걸렸다.
그럼에도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배가본드
우리 부부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넷플릭스에서 하도 광고를 하기도 했고,
뉴질랜드로 오기 전후로는 드라마를 도통 못 보고 있다가
뉴질랜드에 온 지 2년 만에 봤던
한국 드라마라서 그랬는지 좋다고 봤다
미스터 션샤인
와, 지금도 생각하면 코 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드라마.
원래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지 않지만
이것 만큼은 한두 번 더 볼 용의가 있다.
24부로 가는 여정이 너무 짧게 끝나버릴까 봐
한 회차 한 회차를 곱씹기 위해
며칠 간격으로 아껴서 봤다.
역사 왜곡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었던 드라마.
내가 저 당시에 살았더라면
어떤 길을 걷는 사람이었을까를 두고
오래오래 고민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동백이는 이상하다.
40부 내내 나를 웃었다, 울었다 하게 했다.
한국에 있는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자존감이 올라간 것 같다가도
또다시 내려가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동백이가 나 같았다.
스카이 캐슬
방영 중에도 워낙 화제가 되었지만
방영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회자되는 드라마라서
언젠가는 봐야지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나와는 다른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 세상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기대는 안 하고 봤는데
이게 웬걸!
예서 엄마도 불쌍하고, 쌍둥이들 아빠도 불쌍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장 불쌍하고.
마지막 에피소드 2개는
결말을 너무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보여주는 바람에
계몽 드라마 같아져서
손발이 오그라들기는 했다.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시청자들도
느끼고, 깨닫고 했을 것이므로
차라리 18부로 끝냈었다면...
리얼 코믹 풍자극이었다고?
이것은 진정 제대로 비꼰
사회 풍자극이었다.
보좌관
정치 세계를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어서 재밌었다.
진짜 정치판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냥 드라마이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드라마가 만약 극사실적이라면
장태준처럼
도덕적 양심과 정의감을 가진
숨은 히어로 같은 정치인이
실제로도 곳곳에 있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랐다.
멜로가 체질
남편이 혼자 먼저 보기 시작했고
하도 적극적으로
'같이 보기'를 하자고 조르는 통에
4회부터 합류하여 같이 보았다.
작가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나에게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다.
스토리 전개와 대사 전개가
뭔가 때 타지 않은 느낌이랄까...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신선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신선했다.
마지막 회차를 보는 것으로
이 드라마를 끝내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 회를 일주일이나
묵혔다가 봤다.
미스터 썬샤인과 함께
한 번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유일한 드라마 두 개 중 하나이다.
그렇게 하여 정주행에 성공한 드라마 같이 보기는 말할 수 없는 끈끈함과 추억을 남겼다. 우리는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도 시청 소감에 대해 많이 공유하고 내용과 관련된 주제로 토론도 많이 했다. 보고 난 한참 후에도 함께 본 드라마의 내용이나 대사, 삽입곡을 인용하여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더 쉬워졌다. 차기작을 골라 합의하는 과정도 의외의 재미가 있다. 이제 막 「멜로가 체질」의 시청을 끝낸 우리는 이미 차기작으로 「브리저튼」과 「나의 아저씨」로 정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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