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는 내내 한서진(염정아 분)에 마음이 쓰였다. 한서진이 불쌍했다. 한서진이 그렇게 사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한서진을 그렇게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드라마의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한 단어가 떠올랐고 무릎을 탁 쳤다. 그것은 열등감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열등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모습을 가진,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다 정도의 부정적인 기운을 가진 감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드라마에서 한서진이 나올 때마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의 행동과 삶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이어 알게 된 한 가지는 열등감은 자기 자신의 내부로부터 생겨났지만 그 열등감은 외부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열등감은 다른 사람까지도 해친다. 내가 어떤 부분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인간을 차별적으로 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한서진은 사회적 지위와 관련하여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한서진 스스로가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는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스스로가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고, 높은 사회적 위치에 올랐을 때 우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우월 의식과 열등감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며, 그 동전을 가진 자는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대할 것이기 때문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 뻔하다. 굽신거리거나 업신여기거나.
문제는 열등감과 우월 의식이 씌여져 있는 동전을 보인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데 있다. 한서진과는 조금은 다른 동전을 가진 지인을 알고 있다. 그 지인은 본인이 전업 주부인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자신이 전업 주부이기 때문에 무릎이 나온 바지나 레깅스를 입는다고 말하는 모습이 자기를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누군가로부터 무례한 일을 당할 때 본인이 집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후에 그 지인이 취업을 한지 몇 달이 지나고 안부 전화가 온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하면서 수다가 길어졌는데 누군가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일도 안 하고 집에 있어서 그러는 모양이라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동전의 다른 면인 우월 의식으로 바뀐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 통화를 마무리했지만 그 섬뜩함과 찝찝함은 하루 종일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열등감 컴플레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전에 노트에 적었던 글을 발견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같은 어학원에 다니고 있었던 내 또래의 남성을 대하기가 불편했었는데 그를 불편해 했던 나의 감정을 파헤쳐보니 '초라함'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옷차림 또는 사는 모습 등의 겉모습에 대해 느끼는 초라함이었다. 뉴질랜드에 와서 옷차림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에 갈 때는 옷을 고르는데 좀 더 시간을 쏟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우연히 마트나 놀이터에서 그의 가족을 만나게 되면 내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이어 남편의 위아래까지 훑는 나를 보고 깨달았다. 아, 내가 그 앞에서 겉모습에 대해 초라함을 느끼고 있구나. 그 글의 끝은 '왜 초라할까?'였다. 그때는 끝내 초라함의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나는 그때 느꼈던 초라함의 원인을 열등감을 화두 삼아 골똘히 생각하던 때에 알게 되었다. 초라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열등감의 한 표현 방식이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은 본인이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 초라함이었던 것이다. 나는 겉모습이라는 동전을 가지고 있어서 부족함을 느낄 때는 열등감을, 만족감을 느낄 때는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름이 끼쳤다. 만인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스스로를 박애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우월 의식이 있었다고? 나는 고해의 시간을 가졌다. 남편에게 다른 사람의 옷차림을 평가하는 말을 했던 장면이 수도 없이 떠올랐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신도 모르는 동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비교 의식과 편견의 동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의식적으로 그 동전을 버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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