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거슬러 올라갔을 때, 그때부터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그 낮은 자존감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나를 표현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나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을 만들어냈다. 내 성격 중 어느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그걸 선택하겠노라 할 정도로 그것은 내 인생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뉴질랜드에 와서 언어 장벽에 부딪치고, 취업 장벽에 부딪치면서 절정으로 치닫았다. 얼마 남지 않은 자존감마저 바닥이 나고 있었다.
저녁 식사 초대를 받은 어느 날, 식사 준비로 바쁜 집 주인을 잠시 떠나 거실을 둘러보다가 책장을 발견하고 가까이 가서 책 제목을 쭉 훑으면서 생각했다. 뉴질랜드에 정착한 지 꽤나 오래된 집이었는데 이 한국어 책들은 뉴질랜드로 이주 오면서부터 가져온 것들일까, 아니면 뉴질랜드에 거주하면서 하나씩 모은 것들일까? 그러다가 「더 시크릿」에 눈길이 멈췄다. 15년 전쯤이었을까? 직장 상사의 책상 위에서 그 책을 보고 웬일로 책을 다 보시지 하는 생각에 그 책에 대해 물으니 이렇게 답하셨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거 알면 병도 고친다더라. 지금 베스트셀러 1위야"
분명 병을 고치는 시크릿이 들어있을 거란 생각에 며칠 후 그 책을 빌려 읽었다. 대단한 비밀을 기대해서였는지 실망감이 컸던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그 초대받아 간 집의 책장에서 그 책을 보고는 그래 베스트셀러니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집 주인이 어느새 다가와 말했다.
"그 책 빌려줄까요? 그 책 좋더라구요."
얼떨결에 그 책을 빌려와 커피 장인이었던 그 집주인이 밤 10시가 넘어 만들어 준 커피를 마시고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날 밤 그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 눈물의 의미가 뭘까? 나는 며칠 동안 그 이상야릇한 기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내 눈물의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에 그 책을 세 번이나 읽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인간 세상의 비밀이 태고적부터 있어 왔다는 것에 내 삶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다. 대혼란이었다. 중학교 때 겪었던 사춘기가 다시 온 것만 같았다.
이 마구마구 뛰는 가슴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제이로부터 뜬금없이 명상과 관련된 동영상을 받았다. 제이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주말이라 남편은 일을 하러 가고 운전을 하지 못했던 터라 아이들과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은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있던 중에 도서관에서 만났다.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한국말이 들려온 것으로 인해 서로 통성명을 했고 우연히도 제이의 외동딸이 우리 집 큰 아이와 동갑내기였다. 한국인 친구와 어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서로 통해서 몇 번 만났는데 아이들이 노는 동안 제이와 나눈 대화들로부터 혹시 나와 소울메이트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모든 면에서 가치관이 나와 같았다. 그런 제이가 남편의 취업으로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남편이 오랜 기다림 끝에 취업을 하게 된 원인이 이 것 덕분인 것 같다며 보내준 동영상이었다. 「마인드풀tv」의 명상 동영상이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명상의 세계를 접한 나는 이 것을 통해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이제 나의 궁금증은 어릴 적 풀지 못했던 근원적인 호기심으로까지 뻗쳤다. 세상의 이치, 인간의 기원, 신의 유무. 그런 근본적인 것들 말이다.
명상 가이드에 따라 명상을 하면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렇게 눈물을 흘릴 때의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은 「더 시크릿」을 읽었을 때와 똑같았다. 그래서 이거 뭔가 진짜 세상이 있기는 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 이성은 논리적인 설명을 원했다. 「마인드풀tv」 채널의 동영상 목록에서 '더 시크릿'과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더 시크릿이라는 단어 때문에 소름이 돋았고, 신의 계시를 받은 것 마냥 그 동영상을 봤고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당장 그 책을 보고 싶었다. 어디서 구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뉴질랜드에 오고 나서 첫 번째 생일에 맞춰 친구들이 보내 준 택배 상자에 담겨 있었던 이북 리더기가 떠올랐다. 2년 동안 영어만이 오직 살 길이다라는 생각에 영어 관련 콘텐츠에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북 리더기를 잊고 지냈다. 서투른 손으로 어찌어찌 「리얼리티 트랜서핑」 책 3권의 구입과 다운로드를 마치고 서둘러서 읽기를 마쳤다.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내 이성으로는 믿기 힘들었다. 그 책의 '펜듈럼'과 관련된 부분은 무섭기도 하면서도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설 「모모」의 '회색 신사'가 떠올랐다.
"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 (중략)" (마하엘 엔데, 모모, 비룡소, 1판 4쇄, p130)
회색 신사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을 나도 지금껏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쫓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이제 나에게 '에고'와 '영혼'의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껏 쫓고 있던 것, 그러니까 회색 신사가 중요하다고 했던 것은 진짜 나인 영혼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겹겹이 쌓인 에고가 원하는 것이다. 에고가 원하는 것을 쫓느라 영혼은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명상을 하면서, 「더 시크릿」을 읽으면서 흘린 눈물은 어쩌면 영혼이 흘린 눈물이었을지 모르겠다.
이제 나는 영혼의 목소리와 에고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법을 알고 싶었다. 유튜브 채널 「마인드풀tv」 와 책 「리얼리티 트랜서핑」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책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는 영혼을 무의식이나 감정, 마음을 논리나 이성이라고 표현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영혼 또는 마음 또는 진짜 나, 후자를 에고 또는 가짜 나라고 표현했다.)
- 자꾸 여러 가지 이유를 대가며 나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애쓴다. 마음(영혼)에 드는 것은 딱히 이유가 없다.
- 이유 없는 두려움, 실체 없는 위험을 만들어내서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주저하게 만든다. 에고는 본디 육체가 물리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인데 어느새 실체 없는 온갖 위험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위험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게 한다. 그 위험은 실체가 없다. 잘못될 리 없다. 그냥 나아가라.
- 머릿속으로 논리적이고 딱딱 이치에 맞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옳은 선택인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뭔가 끌리지 않는다면, 그건 영혼이 원하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어떤 결정을 앞두고 자신이 내린 결정을 떠올렸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쪼그라지는 기분이 든다면 그건 영혼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 영혼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의심하고 자꾸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답은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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