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달아 미술 관련 서적 3권을 읽었다. 아니 마지막 한 권은 읽다가 포기하였으므로 2권이라고 해야 맞다. 3권 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고, 이번에 읽는 것이 처음이 아닐진대 세 번째 책은 다시 읽어도 어렵다. 예전에 대학교 때 여성학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 읽었던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줄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한 줄을 읽으면 그다음 한 줄과 앞의 한 줄의 연결고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예술의 의미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다. 예술평론가 허버트 리드가 주간 문예지에 연재했던 단편적인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예술론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며, 예술과 미학의 입문서이자 필독서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챕터 1. 예술의 정의부터 이해되지 않았다. 요즘 정신이 산만하여 독해력이 떨어지는가 싶어 집중력의 컨디션이 최상일 때 다시 집어 들어봤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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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처음으로 모든 예술이 음악의 상태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지금까지도 종종 되풀이되는데, 수많은 오해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진실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지닌 여러 추상적 성질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음악에서는, 유독 음악에서만은 예술가가 다른 여러 목적을 위해 흔히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하지 않고서도 청중들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는 어느 정도 실용적인 목적을 갖는 건축물로 스스로를 표현해야 한다.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일상에서 오가는 대화에도 쓰인다. 그리고 화가는 대개 가시적 세계를 재현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한다. 그런데 오직 작곡가만 자신의 의식에 따라 자유롭게 예술작품을 창작한다. 누군가를 즐겁게 하고자 하는 의욕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모든 예술가는 기쁨을 주고 싶은 욕구와 의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예술을 정의한다면, 예술은 곧 마음을 기쁘게 하는 형식을 창조하려는 어떤 시도이다. 우리의 미감을 만족시켜주는 것은 예술의 형식이다. 또한 감각지각에서 맺어지는 형식 관계의 통일과 조화를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미감은 만족한다.
(개정판 16~1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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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인문계 출신이지만 추상적인 표현에 약한 경영학도이다. 허버트 리드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부분이 얼마나 난해한지 제시하고 싶어서 그대로 옮겨 적으니 적으면서 다행히도 다른 예술 분야와 대조를 이루는 음악의 특성부분까지는 조금 이해가 되었다 (독서는 이렇게 하여야 하는 건가 보다.).
조금 더 읽다 보면 앞 부분이 이해되는 순간이 올까 기대했지만 역시 앞서 「성의 역사」를 읽을 때처럼 챕터 간 연관성을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읽기를 포기하고 작가 서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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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BBC에서 발간하는 주간 문예지 <청취자(Listener)>에 연재했던 글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초판(1931)에서 나는 연재 글들을 선별하고 덧붙여 나의 일관된 주장을 적절한 순서로 담고자 했다. 그 후 개정판에서는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완벽을 기하기 위해 몇 개의 장을 추가했다. (중략) 명쾌함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책 곳곳을 약간 수정했다.
(개정판 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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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명쾌한 서문이다. 작가의 주도면밀한 의도가 느껴진다. 내 독해력의 문제다. 시간을 들여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림이 그녀에게
내 나이 서른 살에, 일 하는 여자일 때 읽었던 책이다. 그때도 공감이 많이 되었는지 간단하게 남겨져 있던 후기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추천했다고 쓰여 있었다. 미술 관련 책들을 연달아 읽으니 주제가 미술일 뿐이지 글의 내용에 따라 글의 형식이 다른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림 에세이라고 명할 수 있겠다. 작가의 입장이나 심정을 대변하는 그림 또는 위로하는 그림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감상평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여러 인물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소설을 가장 좋아하지만 한 사람의 지식과 감성을 읽을 수 있는 에세이도 좋아한다. 미술 관련 전공자로서 그림에 대한 작가의 지식은 당연하다 치고 책에 등장하는 많은 다른 책들에 자극받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여러 번 등장해 전율을 느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는 느낌은 이런 거였다.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달과 6펜스」가 폴 고갱의 삶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나는 잊었던 것일까? 몰랐던 것일까? 앨리슨 피어슨의 소설 「여자 만세」와 헤리엇 스콧 채스먼의 소설 「아침 신문 읽는 여인」, 강석경의 소설 「미불」,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작가 추천으로 읽어 볼 생각이다.
그림 읽는 CEO
저자를 일로 만나게 되어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선물 받았다. 이 책에는 예술가들의 인생이나 예술관 그리고 해당 작품의 제작 의도가 상세히 나와 있다. 예술가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살아볼 수 있었던 며칠이었다. 독창성과 위트가 돋보이는 몇 작품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책에서 읽은 내용을 곁들여 설명해주니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이 책을 읽고 역시 지적 호기심이 더 자극되어 소설 쿠오바디스와 로스 킹의 소설들이 읽고 싶어졌으며, 새롭게 관심 갖게 된 화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마티스이다.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어린아이의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시시하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해야겠다. 미술계의 반응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과 마티스에게는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마티스의 그림이 이해되었다. 자신은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다양한 감정은 색채로만 표현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 마티스의 관점은 앞선 책 「예술의 의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마티스가 직접 쓴 「화가의 노트」라는 글에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서술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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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옷장이 있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선명하게 빨간색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빨간색을 칠하여 나를 만족시킨다. 그 빨간색과 하얀 캔버스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진다. 빨간색 옆에 초록색을 칠하고 노란색으로 마루를 그릴 때, 그 초록색과 노란색과 캔버스 사이에는 소리 없는 관계들이 존재할 것이다. (중략) 관찰자의 주의를 잡아 끄는 것이 문제이다. 즉 그리고자 하는 특정 대상보다 그림 자체에 관찰자가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의 의미」 개정판 287~28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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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자 하는 특정 대상보다 그림 자체에 관찰자가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한 마티스의 그림은 그래서 추상화 같아 보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칸딘스키에 의해 최초로 추상화가 탄생한다. 칸딘스키는 거꾸로 세워진 자신의 그림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색채와 순수한 형태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된다. 칸딘스키의 다음 이야기를 통해 어렵게만 느껴졌던 추상화에 한결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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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은 내적, 외적인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데 내적 요소는 예술가의 영혼에 내재된 정서를 가리킨다. 이 정서는 감상자의 영혼에 예술가와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중략) 나는 눈이나 현미경,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세상 만물의 숨겨진 영혼을 체험하는 것을 내적 통찰이라고 부른다. 이런 통찰력은 단단한 껍질인 외적 형태를 관통해서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게 만든다. 그때 인간의 감각은 사물의 속살에 닿으면서 맥박을 느끼게 된다.
(「그림 읽는 CEO」 15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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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를 이렇게 이해하고 나니 다시 앞의 책 「그림이 그녀에게」의 '멈추어라 신문이여, 너 참 아름답구나' 챕터가 겹쳐져 보였다. 저자가 신문사 편집부로 발령받아 1여 년간 일하면서 느낀 점을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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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편집'이라는 일의 속성이 좋았다. 대부분의 선배들은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신문이라는 매체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신문사에서 일하면서도 기사의 내용과 관계없는 순수한 '존재'로서의 신문 그 자체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나는 그들의 솔직한 애정 앞에서 때때로 뭉클해졌다. (중략) 편집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매일 한 번 쯤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엉성하나마 면을 엮어놓고, 판을 내리기 직전, 활자와 사진과 여백이 만들어낸 하모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 신문이라는 것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림이 그녀에게」 225~22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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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술 관련 책 세 권으로부터 하나의 연결 고리를 찾아낸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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