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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가지 생각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비법

※ 유의: 합격연도인 2004년 이전 버전이니 최근 시험제도에 맞게 바꾸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은 운 반, 실력 반이라던데 너 이번에 시험운이 들어 있단다. 그러니 절반은 노력해서 채워 봐."

일찍이 공인회계사 준비반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고비 빠진 대학생으로서 유희와 연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공부는 뒷전이었다가 졸업반을 앞두고 나의 장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졸업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1년만 휴학하겠다고 선언하고 바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같은 해에 동차 합격에는 실패한 후 그다음 해에 신년운세를 보고 오신 엄마의 말씀이었다. 나는 점술가의 말을 믿지는 않았으나 이번에 해보고 안되면 다른 거 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 점술가의 말인지, 엄마의 말인지 몰라도 '나는 운이 좋아.'라고 그냥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나머지 반인 '실력'을 채우기 위해 6개월간 치밀하고도 강도 높은 계획을 세웠다.  

 

 어떤 일이든 전략이 필요하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다. 나는 이미 2차 시험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실패를 경험 삼아 다음 시도에서 달리 해 볼 도리가 있었으니 나의 그 실패는 다음번의 성공을 위해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실패한 이유를 분석했다. 첫째도, 둘째도 공부 양이 모자랐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총 다섯 과목에서 공부해야 할 분량과 난이도에 압도되어 두 시간을 붙들고 있어도 한 두 페이지밖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모두 훑지도 못해서 미지의 영역을 불안해하며 시험장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시도에서 사용했던 전략이 '30분 단위 학습법', '단권화', '노트 줄이기', '문제 되풀기', '작심삼일'이었다. 

 

1. 시험을 목표로 공부할 때 모든 분야에 적용가능한 공통 기법

1) 30분 단위 학습법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거나 자신의 실력에 비해 학습할 내용의 수준이 높은 경우에 추천한다. 이 방법으로 공부하기 전에는 한 과목을 하루 종일 공부하거나, 오전에 과목 1, 오후에 과목 2, 저녁에 과목 3을 공부하곤 했다. 한 과목만 4시간 또는 10시간 이상을 내리 붙잡고 있었던 꼴이다. 대신 30분마다 과목을 바꾸어 공부하기로 했다. 이를 테면, 공부해야 할 과목이 총 6개라고 가정할 때 다음과 같다. 재미를 주기 위해 가끔 과목의 순서를 바꾸어 주기도 한다.

 

 

시작

9시 ~ 9시반: 과목 1

9시 반 ~ 10시: 과목 2

10시 ~ 10시 반: 과목 3

10시 반 ~ 11시: 과목 4

11시 ~ 11시 반: 과목 5

11시 반 ~12시: 과목 6

휴식

1시 ~ 1시 반: 과목 1

1시 반 ~ 2시: 과목 2

2시 ~ 2시 반: 과목 3

2시 반~ 3시: 과목 4

3시 ~ 3시 반: 과목 5

3시 반 ~4시: 과목 6

4시 ~ 4시 반: 과목 1

4시 반 ~ 5시: 과목 2

5시 ~ 5시 반: 과목 3

5시 반~ 6시: 과목 4

휴식

7시 ~ 7시 반: 과목 5

7시 반 ~8시: 과목 6

8시 ~ 8시 반: 과목 1

8시 반 ~ 9시: 과목 2

다음 날 아침 과목 3에서 다시 시작

 

 이런 식으로 빠른 템포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이 바쁘다. 일반적으로 자리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집중력이 가동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선 자리에도 신경이 좀 쓰이고, 책상 구석구석에 있는 것들에도 눈이 가고, 핸드폰도 한 번 보게 되고, 책 표지도 슬쩍 보면서 여유를 부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지금 허락된 30분이라는 시간은 뭔가를 하기에는 짧다고 느껴지는 시간인 것 같다. 과학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30분은 짧다. 그래서 서두르게 된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 바로 집중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그리고 30분이 끝난 후에 성과를 보면 상대적으로 많은 진도를 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시간 동안 10문제를 풀 수 있었다면 30분 동안 6, 7문제를 풀 수 있었다. 집중이 되지 않은 채 버려지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인 것 같다.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온다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커피를 타 올 시간은 일부러 따로 빼지 않았다. 필요할 때 저 안에서 쪼개어했다. 나에게 30분은 너무 짧게 느껴졌기 때문에 화장실에 다녀 갈 때 거의 뛴 걸음으로 다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지금도 공부든 어떤 일이든 하기 싫어지는 경우에는 30분 단위로 쪼개어 움직인다. 매우 효율적인 시간 관리가 가능해진다. 다만, 이렇게 쫓기 듯 바쁘게 하는 것을 지속할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매우 규칙적이고, 꾸준하고, 자기 통제가 잘 되는 사람이라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처럼 규칙적이지 못하고, 작심삼일을 밥 먹듯이 하고, 기분파인 사람에게는 매우 좋은 전략이라고 자신한다. 나 같은 성향의 사람도 장기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2) 단권화

 세상은 넓고 좋은 교재는 많다. 한 과목만 하더라도 유명 학자 또는 강사에 의해 잘 만들어진 교재가 무척 많다. 그 책들을 다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의 궁극은 하나로 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수들에 의해 쓰인 책들은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이 보기에는 달라 보일지 몰라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모두가 하나를 말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좋다고 소문난 책들을 기준으로 재빨리 자기와 잘 맞는 책을 한 권 추려내는 것이 빠른 합격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한 과목 당 한 권으로 단권화가 되고 나면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그 책에만 헌신하여야 한다. 그 책의 한 줄이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반복해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보다 지루해지면 부분, 부분 골라 보기도 하고 뒷 챕터부터 거꾸로 보기 등 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를 주기 위한 여러 시도들을 해보는 것이다. 

 

3) 노트 만들고 줄이기

 나는 시험에 임박하였을 때 과목 별로 나만의 노트를 만들었다. 공인회계사 1차 시험 정도라면 한 달 전에, 2차 시험 때는 세 달 전에, 그 보다 쉬운 시험이라면 일주일 전에 노트를 만들어도 충분하다. 그 노트에 그때까지 공부를 했어도 체득이 안 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헷갈리는 것, 계속 실수하는 것들을 공부하다가 나올 때마다 두서없이 적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색깔의 펜을 불규칙적으로, 무작위로, 별다른 의도 없이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들고 있는 펜이 빨간 펜이었다면 들고 있던 그대로 빨간색으로 적고, 어느 날 주황색을 들고 있다가 적고자 하면 그저 들고 있던 주황색 펜으로 적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적다 보면 여러 가지 색깔이 불규칙적으로 알록달록한 (검정과 파랑만으로도 괜찮지만 나의 경우 색깔의 사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과가 좋았다.) 노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노트가 다 완성되기 전이라도 매일 곁에 두고 짬이 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왕복 두 시간 거리의 학교까지 통학하였기 때문에 지하철에서는 항상 그 노트들을 훑어보는 데 그 두 시간을 썼다. 시험일에 가까워질수록 노트에 적힌 내용이 많아지겠지만, 그만큼 훑어본 시간들도 축적되었기 때문에 특히 앞부분은 이미 다 외워졌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뒷부분부터 보는 것이다. 색깔을 두 가지 이상으로 불규칙적으로 마구 썼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반복해서 보다 보면 그 내용이 색깔과 위치와 함께 기억된다. 그래서 시험장에서 잘 생각이 나지 않을 경우에도 색깔과 위치에 집중하며 상기하려고 애쓰면 어느새 내용도 떠오르는 기적을 경험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시험 전날이 되면 그중에서도 확실히 외워졌는지 미심쩍은 부분에 형광펜으로 크게 표시해둔다. 즉, 노트 만들기의 핵심은 그 노트의 내용을 줄이고, 또 줄이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험 당일이 되면 당황하지 않고 그 노트만 챙겨 가서 시험 종이 울릴 때까지 형광펜으로 추려진 노트들을 보며 시험으로 인한 불안한 마음을 달랜다. 

 

4) 문제 되풀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전략으로 공부의 양이 어느 정도 쌓여 갈 테고, 시험일도 곧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문제풀이가 필요하다. 다양한 문제풀이를 통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다시 추려내야 한다. 적어도 한 과목 당 기출문제 또는 예상문제를 10묶음(해당 과목의 출제 문항 수 X 10을 말한다.) 정도는 풀어야 다양한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 틀린 문제 옆에는 틀렸다는 표시 (나는 '틱' V 표시를 한다)를 확실히 해두고, 10묶음을 한 바퀴 다 돌고 와서는 다시 한번 10묶음을 한 바퀴 푼다. 그리고 한 번 더. 그렇게 3회 차를 돌리고 난 후에는 3회 중 한 번 이상 틀린 문제들만 골라 푼다. 이때에도 또 틀렸다면 V를 또 표시한다. 만약 맞혔다면 마지막 V의 윗부분을 막아 역삼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비로소 맞혔다는 뜻이다. 이렇게 모든 V가 역삼각형이 될 때까지 반복하여 틀린 문제가 단 하나도 남지 않도록 한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틀린 문제가 줄어들 것이므로 걸리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 것이다. 내 실력과 비슷한 수준의 난이도라면 1~2회 차 정도에서 이 과정이 모두 끝나겠지만 나의 경우엔 세무회계 과목을 예로 들면 10회 차까지도 해봤다.   

 

5) 작심삼일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공부하는 데에만 쓸 필요는 없다. 더구나 장기전일 경우에는 불가능하기도 하다. 내가 최대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는 시간은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였다. 30분 단위 학습법으로 10시간 동안 공부하는 것을 매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장기전을 위해서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와 같은 문화 활동을 통해 감성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 만약 나이가 있다면 체력 관리도 필수다. 이런 것들이 학습의 효율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벼락치기로 끝날 시험이 아닌 만큼 적절한 휴식과 휴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규칙적인 걸 좋아했던 나의 친구는 6일간 공부하고 7일 차에 휴식하는 6일제를 스스로도 참 잘 지켰다. 하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됐다. 당시 지금의 남편과 연애 중이었는데 3일 정도 공부하고 나면 나가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잠깐 나가서 놀고 다시 돌아와 공부해야지 하는 다짐은 더더욱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일단 나갔다. 나가서 그날은 아예 하루 종일 놀았다. 그러고 난 다음 날에는 공부가 더 잘 됐다. 밀린 진도를 더 하겠다는 의지도 불타올랐다. 어떤 때는 풀린 고삐가 며칠을 가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손 놓고 있다가 돌아오면 죄책감 때문에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죄책감이 드는 날에는 작정하고 밤을 새워 공부했다. 며칠 빠뜨린 부분을 만회하고자 하는 그 밤샘 노력은 나의 죄책감을 씻어 주어 정상적인 학습 스케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규칙적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 점이 중도 포기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공부든 운동이든 내 경험으로는 불규칙적이어도 괜찮다. 또다시 작심삼일 할 의지만 있으면 된다. 많이 빠졌더라도 다시 메우면 된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 몇 번 빠졌다고 해서 전체를 포기해버리지 말자.      

 

2. 공인회계사 시험에 적용 가능한 과목 별 세부 사항

1) 영어

 지금은 영어 시험이 공인 영어시험으로 대체되었으나 내가 1차 시험에 합격했던 2003년에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휘력이 중요한 시험이었고, 토플을 봐 본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토플 교재에서 사용되는 단어가 많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친구들 셋이서 토플 교재에 등장하는 단어를 하루 100개씩 외우기로 하고, 틀린 문제 한 개 당 100원을 벌금으로 내기로 했다. 10개만 틀려도 1,000원이고, 그걸 1차 시험 두 달 전까지 몇 달을 했으니 벌금으로 낸 돈이 제법 많았다. 기금이 3만 원 이상 쌓이면 맛있는 밥과 커피를 위한 회동도 가졌다. 이렇게 자극도 되면서 재미도 주는 작은 이벤트를 넣어주면 시험 공부에 몇 년이 걸리는 장기전에 활력을 줄 수 있다.

 

2)  상법, 회계감사

 암기에 취약하고 암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상법과 회계감사 같은 과목은 공부하는 것도 지루하고 시험 부담도 큰 과목이었다. 그리하여 과락만 면한다는 자세로 최소한의 시간과 에너지만을 투자하기로 했다. 대신 좋아하는 과목에 더 많이 투자하여 평균 점수를 높이는 전략이었다. 상법과 회계감사는 책을 펴면 5분 안에 잠들기 일쑤였기 때문에 절대 혼자서 책으로 공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강사의 녹음된 강의를 듣는 것으로 공부를 대체했다. 오전에 한 시간 듣고, 오후에 한 시간 듣는 것이 해당 과목의 학습법의 전부였다. 물론 후술 하게 될 문제풀이는 별도로 말이다. 역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권화와 반복에 있으니 그 강사와 그 책과 자신의 전략을 믿고 끝까지 한 눈 팔지 않아야 한다. 실제 결과는 과락은 면한 정도로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다.

 

3)  회계 과목과 세무 과목

 회계 과목과 세무 과목은 수학 과목을 공부하는 것과 같이 반드시 손으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절대로 이해되었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먼저 이해하고, 직접 풀어보고, 답을 맞혀 보는 과정을 꼼꼼하게 거쳐야만 한다. 특히 2차 시험 대비를 위해서는 시험장에서 답을 쓰는 분위기와 똑같이 조성하여 연습하곤 했었다. 예를 들어 시험 답안지와 비슷한 답안지를 연습장으로 썼으며, 실제로 시험장에서 사용할 예정인 펜으로 연습 답안지를 작성할 때에도 사용했다. 2차 시험에 합격했던 2004년 전후 시험장에서 검정 펜 혹은 파란 펜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당시 어떤 책에서 파란색이 신뢰감을 주는 색깔이라고 했던 것과 내가 악필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나는 파란 펜을 사용하였었다. 매일매일 파란색으로 가득 찬 연습 답안지가 두둑이 쌓여가는 것을 보며 스스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2차 과목인 재무회계의 범위에 고급회계가 포함되어 있어 총 4~5 문항 중 1 문항은 반드시 연결 회계 문제가 출제되었다. 책 한 권에서 한 문제가 나오는 분량이 어마어마한 공부이기도 했고, 문제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여기에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적용하여 나는 이 연결 문제를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일단 점수의 20%~25%를 포기하고도 과락은 면해야 했으므로 중급회계의 범위에서 완전성을 꾀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었다. 

 

 2차 시험에서 재무회계와 세무회계에서 좋은 성적(내 기억으로는 둘 다 60점을 넘기지 못했다.)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받을 수 있었던 최선의 점수였다고 생각한다. 당초 나의 목표는 100점이 아니라 합격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합격 후에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면서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으로 연결 회계가 핵심이 되자 그제야 나는 연결회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험과는 별개로 진리탐구는 그 후 언제라도 가능하므로 시험 준비 기간에 너무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는 말자.     

 

4)  좋아하는 과목

 나는 1차 시험의 경제원론, 2차 시험에서는 재무관리와 원가회계 과목을 무척 좋아하였다. 나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과목은 성적도 좋았다.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재미와 성과를 모두 손에 쥘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그럴 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도 즐겁게 하는 사람을 쫓아갈 수 없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경제원론, 재무관리, 원가회계에서 놀랍게도 80점 이상을 받았다. 좋아하는 과목은 어떤 식으로 공부하든 성과가 좋기 때문에 전략 조차 필요 없기 때문에 이 과목들에 대한 공부 방법이 기억나는 것이 특별히 없다. 그래서 어떤 시험이든, 어떤 일이든 좋아하는 과목, 좋아하는 분야가 반드시 하나는 있기를 바란다. 좋은 게 단 하나도 없다면 다른 시험이나 다른 일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길고 힘든 자신과의 싸움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닐 수 있고, 그래야만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결국, 나는 2차 시험에서 세무회계 (지금은 '세법'으로 바뀜.) 40점대, 재무관리 80점대, 회계감사 40점대, 원가회계 80점대, 재무회계 50점대로 전과목 배점합계의 6할에 약간 못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재무회계 시험의 난이도가 높아져 최소 선발인원이었던 1000명에 미달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합격한 것이었다. 엄마가 말한 그 '운'이었을까? 

 

3. 학습 태도 및 시험 당일 마음가짐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는 몇 년이 걸리는 시험이다. 보통 2년 공부하고 합격했다고 하면 모두가 놀라워할 정도로 쉬운 시험은 아니라서 일명 '장수생'도 많다. 나는 1999년도 하반기에 회계사 시험 준비에 처음 발을 담갔으나 2년 정도는 제대로 된 공부 없이 시험만 치렀고, 그 후 3년은 시험 준비에 전념하여 2004년에 최종 합격하였다. 내가 있던 준비반에도 오래 공부한 선배들이 많았다. 그 선배들이 노력을 안 했거나 실력이 없지 않았다. 그런 고수들이 정작 시험에서는 떨어지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는데 가까운 친구가 오래 공부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을 억누르는 부담감과 불안이 공부에 방해가 되어 학습 효율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시험 당일에도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같은 준비반 사람들이 2차 시험을 앞둔 나를 보고 고요하고 차분하다고 했었다. 그것이 내 실력에 비해 시험 점수가 높게 나온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고요하고 차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때의 나의 마음가짐은 이것이 마지막 도전이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절박했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마지막'은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한 후 떨어지면 그 길을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겠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즉 '떨어져도 괜찮아.'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 마음이 나를 담담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반드시 이뤄야 할 건 없다. 내 갈 길은 언제나 있을 테니까.     

 

4. 당부의 말씀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당연히 공부법이 꼭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또 아직도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다. 나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고 싶다는 꿈을 꿨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들도 생각해냈다. 이 세 가지 단계는 모두 '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나만이 나의 꿈을 알 수 있고, 나만이 내가 그 일을 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부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나를 탐구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내가 오래전 그 나날들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집요하게 연구했던 것의 결과물이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가 잘 안 되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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