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캠핑 1년 차 때
재작년 여름, 그러니까 2019년 12월에 처음 캠핑을 갔다. 나에겐 뉴질랜드에 와서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낯섦의 연속이었기에 굳이 다른 곳으로 또 여행을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남편은 나보다도 먼저 여행의 의미를 단조로운 일상에서의 탈출에 두고 있었는데 그즈음 남편은 자신의 일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며 여행이 간절하다 외쳤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더 파격적이길 원했다. 그와 나 답지 않은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작정 텐트를 사 왔다. 그리고 겁이 많은 우리 부부는 우리 집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근처에 바다가 있기는커녕 캠핑장 안에 수영장 조차 없는 도심 속 휴양지형 캠핑장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평소 잠자리에 들기 전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남편에게 지퍼 하나 달랑 달린 텐트 안에서 우리 네 식구가 잔다는 것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큰 원인이 되었으며, 그에 못지않은 원인으로는 옆의 텐트 사람들의 대화 소리, 지퍼를 여닫으며 텐트를 들락날락하는 소리 등이 있었다. 그 첫 번째 캠핑을 마치고 난 후 소감을 나누었던 우리 부부는 '좋았는지 모르겠다'였다. 동생네 가족을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 친구들이 캠핑의 매력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안 가봐서 그렇지 캠핑은 그렇게 좋은 거구나 했던 예상과는 달리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에 정확히 우리 가족 모두 캠핑이 다시 가고 싶어 졌다는 거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여전히 바닷가는 아니었지만 수영장이 딸린 곳으로 캠핑을 갔다. 두 번째 캠핑에서는 첫 번째보다 더 재미가 느껴졌다. 수영장과 내 텐트를 왔다 갔다, 내 마음대로 수영장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나와는 달리 남편은 여전히 밤새 텐트가 날아갈까, 무너질까, 누군가 지퍼를 덜컥 열고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안절부절못한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세 번째 캠핑에서는 정말로 거센 바람이 텐트를 무너뜨렸다. 그날의 풍속을 보고는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던 남편에게 나는 '그럴 일 없다'라고 핀잔을 주었기 때문에 텐트가 정말로 무너졌을 때 우리 부부 사이도 살짝 무너질 뻔했다. 그렇게 그 해에 뭔지 모르겠는 세 번의 캠핑을 마쳤다.
2. 캠핑 2년 차 때
2020년 12월, 우리는, 특히 나는 더 큰 파격을 원했다. 1박은 캠핑하기엔 너무 짧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캠핑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남편의 여름휴가에 맞추어 6박 7일간의 캠핑을 기획하였다. 멀미를 하기 시작한 둘째 아이를 위하여 두 시간 이상의 거리로는 운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풍경이 기가 막히다고 하는 멋진 곳들을 다녀보지 못했었다. 그런 이유로 6박 7일간의 캠핑이기는 하지만 캠핑 사이트를 세 군데 예약하였다. 멀미 나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두 번째 사이트가 최종 목적지였으며,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가며 오며 머물게 될 일종의 경유지였다. 그렇다고 단순한 경유지는 아니었고, 각각 개별의 휴양지로서도 손색이 없는 멋진 곳이었다. 첫 번째 사이트는 바다와 수영장을 모두 품은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 별 다섯 개짜리의 캠핑장이었다.
궁극적인 목적지였던 두 번째 사이트에는 근처에 핫 워터 비치가 있었다. 바닷물이 빠지고 난 후의 모래사장을 열심히 파면 뜨겁고, 따뜻한 바닷물이 샘솟는 인기 만점의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물때와 날씨가 안 맞아 낮시간은 수영장도 없는 숲 속의 캠핑장에서 보냈지만 드디어 저녁에 비가 그치고 물때가 맞아 다시 시도할 기회가 왔기에 놓치지 않고, 삽을 들고 30분 거리의 바다까지 걸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물을 발견하여 웅덩이 하나씩을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었다. 우리도 뒤늦게 열심히 삽질을 했지만 광활한 모래사장에서 핫 스팟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 만큼 어려웠다. 때마침 한 무리가 자리를 뜨면서 그 웅덩이를 우리에게 양도해주었다. 그 웅덩이의 물을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바로 위에 뜨거운 웅덩이에 있던 사람이 물길을 내어주니 뜨거운 물과 미지근한 물이 혼합되어 적당히 따뜻한 물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져 모든 것이 까맣게 보였다. 사람들의 수닷 소리와 우레와 같은 파도 소리가 들리고 따뜻한 물과 모래의 감촉만 느껴질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밤이 되어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데 그 많았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숙소의 사람들이었는지 우리와 같은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조금 무시무시했지만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 느껴 본 어둠이 주는 공포감을 맛보았다.
세 번째 캠핑장은 낡은 수영장이 딸린 조그만 캠핑장이었으며, 마을의 크기도 떠들썩한 명성과 달리 소박하니 작았다. 명물이라고 소문난 옛 광산을 탐험하는 열차에 올랐지만 남편과 둘째 아이는 열차에서 잠이 들 정도로 지루했고, '아이풀 타워'라는 일명 모든 것이 다 보이는 전망대에서는 익히 많이 보아 왔던 산과 저 멀리 아득히 바다가 보일 뿐이었다. 기대치가 확 떨어진 그 순간, 수영장 미끄럼틀의 매력에 빠진 큰 아이는 백 번쯤 타고 내려오면서 '재밌다'라는 말을 연신 했다. 수영 중이었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맞이 이벤트로 나타난 산타 클로스로부터 사탕 꾸러미를 받았고, 시골 읍내 같아 보이는 곳에서 찾아 들어간 레스토랑의 화덕 피자가 맛이 일품이어서 큰 아이는 지금도 그 피자를 먹으러 거기에 가자고 조른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하이라이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도로 위를 달리는 차 밖의 풍경이 웅장했기 때문이다. '이야 진짜 멋있다'라는 혼잣말을 백번쯤 내뱉은 것 같다. 그렇게 6박 7일간의 캠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신이 났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그랬는데 그 이유는 놀랍게도 캠핑이 즐거웠기 때문이라기도 보다 캠핑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집이 그리워서였다.
3. 캠핑장에서의 악재
둘째 아이가 6박 7일짜리의 캠핑 중 2일 차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열쯤이야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집도 아닌데 많이 힘들겠다는 마음이 들어 아이가 안쓰러웠다. 해열제도 없었다. 집에서도 해열제를 먹일지, 말지를 두고 남편과 옥신각신 하기 일쑤였는데 남편은 자신의 상비약으로 챙겨 온 해열, 진통제를 조금 쪼개서 먹이자고 제안했고,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열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자 열이 오른 지 이틀째 되는 날 남편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알약 조금을 아이에게 먹였다고 나에게 쏘아붙였다. 몇 시간은 기운을 차린 것처럼 제법 잘 노는 것처럼 보였는데 곧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열을 마지막으로 다행히 열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으나 여전히 입맛은 없어 보였다. 첫 캠핑장에서 철수하는 길에 맛집이라고 해서 들렀던 레스토랑에서 둘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시켜줬지만 감자튀김은 손도 안되고 만지작 거리던 설탕 (커피 손님을 위해 마련되어 있었던 sweatner, sugar, low sugar)을 종류별로 세 봉지를 먹고는 기운을 차렸다.
마지막 캠핑장을 떠나 집으로 가는 날, 오전 10시에 산타 퍼레이드를 한다고 해서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치고 산타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산타가 주는 사탕을 받으려고 줄을 섰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마지막까지 즐거운 추억으로 꽉꽉 채웠다는 뿌듯함과 감사한 마음도 잠시 시동을 걸고 캠핑장을 나온 지 불과 5분도 안되어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어떤 경고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간단한 구글 검색만으로는 엔진 관련 경고인 듯 보였고, 이를 무시하고 집으로 가는 꼬불꼬불한 길을 가기엔 겁이 났다. 12월 26일, 1월 첫째 주까지는 모두들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을 터라 근처의 수리 센터를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리셉션에 들어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혹시 오늘 아니 1월 첫째 주까지 예약 가능한 텐트 사이트가 있는지를 묻고 있는데 근처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나이 든 직원이 다가와 자신이 확인해주겠다고 나섰다. 먼저 우리 차의 경고등을 확인한 후 머케닉(자동차 정비공)은 아니지만 왕년에 엔지니어 (자동차 설계 등의 기술자)로 일했었다고 말하면서 보닛을 열어 엔진 오일 파트를 확인했다. 그가 내린 진단은 지금 당장 운전을 하지 못할 정도의 결함이 아니므로 집에 도착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차후에 정비를 맡기면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 부부는 그제야 안심하고 차에 올랐다. 뒷 좌석에서 안전벨트를 매던 큰 아이가 자신이 굉장한 비밀을 발견한 것 같다며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유난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딸: 방금 우리를 도와주었던 아저씨가 아까 산타 할아버지였다.
나: 어떻게 알았어?
딸: 양말을 봤어. 아까 산타 할아버지가 신고 있었던 똑같은 양말과 신발을 신고 있었어.
4. 나에게 캠핑이란?
뉴질랜드 현지인들의 최고의 바캉스 지라고 하는 곳에 한 번 가보려고 했는데 예약이 차 있어 쉽게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곳은 내년의 여름휴가를 위해 올해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예약하는 곳이라 들었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해마다 같은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을 가족의 전통인 것처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멋진 전통이라고 생각했다.
6박 7일간의 캠핑 후 캠핑의 맛에 들린 우리 부부는 아이들 또래의 자녀가 있는 가정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같이 캠핑에 나섰다. 다른 가족과 함께 하는 캠핑도 색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 번에 또 다른 가정을 더 합류시켜 세 집이 함께 캠핑을 갔고, 모두들 그 대규모 인원이 함께 하는 캠핑이 재미있었는지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자고 했다. 적당한 거리에, 적당한 시설을 갖춘 캠핑장이 마땅치 않아 같은 캠핑장으로 예약하게 되었다. 그 마지막 캠핑을 향해 출발하는 날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그 캠핑장이 위치한 눈에 익은 동네에 들어서자 마침내 내 기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았다. 남편도 마침내 입을 열었는데 그 첫마디가 "아, 이제 여기도 지겹다. 설레지가 않네."였다. 나도 같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낯선 곳으로의 이동 그리고 낯선 체험들이 기다리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캠핑이란 낯선 곳에서 낯선 체험들을 하며 마음고생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 고생이 심하면 심할수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 행복할 것이므로. 우리 집의 모든 것에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므로. 해마다 같은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가족 전통은 개고생을 하기 위해 여행을 가는 우리 집과는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왜 그것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그럴 바엔 다른 것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
피카소는 그의 작품 활동을 두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캠핑과 여행이 그렇다. 어디로 가게 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왜 그곳에 가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알고 있는 곳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그럴 바엔 집에 있는 것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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