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었던 여행 관련 책들을 작년부터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읽었던 책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키의 여행법」,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예담 출판사의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 이상관의 「나는 중국이 매일 낯설다」, 탁현민의 「흔들리며 흔들거리며」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다시 읽기를 마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대한 후기를 쓰기로 하였다.
지금은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판이 되었지만 이미 알랭 드 보통은 나의 관심 작가였으므로 신간으로 나오자마자 구입하였다. 당시 소감은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좋아했던 터라 이런 식의 에세이라서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학술지에 실린 논문 같았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읽기를 포기했을 것만 같다. 일반적으로 여행 에세이라고 하면 여행지에서 겪은 여행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여행지가 사고의 시작점이 될 뿐이지 그 후로 작가 본인, 주로 다른 작가 혹은 다른 예술가의 관점을 빌려 말 그대로 '여행의 기술'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목차조차 특별하다.
'출발' 장에서 '귀환' 장까지 여행 시작 전 가지게 되는 기대, 여행 동기에 따라 달라지는 여행 방법, 여행지에서 보게 되는 장면들, 미술을 이용하여 여행지의 풍경을 감상하는 방법, 여행 후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을 때의 기분과 그 익숙한 곳을 여행하는 기분에 대해 밀도 있게 논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도구로서 각 장에서는 작가와 화가 등이 안내자로 등장한다(어쩌면 여행이 작가와 화가들의 예술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읽어 내려 간 순서 (그러니까 페이지 순서) 대로 적은 감상평이다 (페이지 번호 삽입함).
1. 출발
알랭 드 보통(이후 '저자')는 기억은 단순화와 선택을 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기대와 흡사하다고 했다(p.27). 기대는 미래 시점을 향하고 있고, 기억은 과거 시점을 향하고 있다. 그런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과거에 대한 기억은 단순하고, 선택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단편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 같다. 오직 현재만이 충만하다. 모든 것이 존재하며, 빠뜨리지 않고 모든 것을 느끼는 것이 가능한 것은 오직 지금이다. 이 대목에서 「모모」의 수수께끼가 떠올랐다.
프랑스의 유명 시인인 샤를 보들레르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하기를 평생 갈망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p.52)"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보들레르와 같은 이유로 여행하기를 좋아하거나 혹은 여행을 하는 것이(좋아하지 않으면서 다닐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닐까? 나도 여기에 그런 이유로 왔다. 덧붙이자면 저자가 기술하던 중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이 소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주인공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데 의식의 흐름으로 율리시즈의 전체 여정을 따라가고 있으며, 그래서 목차가 장소명으로 되어 있다는 소개 글만 보고도 소설 애호가로서 흥미와 호기심이 생겼다.
저자는 비행기가 이륙한 후 곧 펼쳐지는 하늘 아래의 우리가 알던 세계를 비행기 안에서 보는 것을 이렇게 비유했다. "새로운 언어로 익숙한 책을 판독하려 하는 것과 같다(p.64)." 우리가 알던 세계는 '익숙한 책'이고,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 안에서 가지게 된 새로운 시각은 '새로운 언어'이다. 익히 내용을 잘 알고 있던 빨강머리 앤을 영어 원서로 읽었을 때의 기분이 떠올라 그 뜻이 와닿았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안내자, 에드워드 호퍼가 등장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평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의 그림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저자가 정곡을 찌르며 다음과 같이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들은 황량함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황량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자신의 슬픔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 슬픔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 준다(p.72)." 그때 문득 기억이 돌아왔다. 2004년 당시 이 책을 읽고 에드워드 호퍼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을, 그 길로 그의 화첩을 구입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도시의 쓸쓸함을 보고 있을 때 나의 쓸쓸함이 위로받는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는 표면적으로는 마티스의 천진난만한 원색을 좋아해서 내 눈길 닿는 곳마다 마티스의 그림을 걸어두고 싶다면, 호퍼의 그림은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가 헛헛할 때마다 살포시 꺼내어 위로받고 싶었다는 그 감상을 하게 된 계기가 이 책 「여행의 기술」이었던 것이다.
이어 저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의 '기차'에 주목한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p. 83)" 저자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가 이러한 장소가 되어 준다고 말한다. "~해야 할 일이 오직 생각뿐일 때에 정신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생각도 쉬워진다.(p.83)"며 저자 자신이 기차 안에서 떠올렸던 생각들을 예시한다. "평야를 가로질러 여행하면서 나는 모처럼 아무런 억제 없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집필 중인 스탕달 론에 대하여 생각하고, 나의 두 친구 사이에 형성된 불신 관계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 정신이 어려운 관념에 부딪혀 텅 비어버릴 때마다 의식의 흐름은 창밖의 대상에 고정되어 몇 초 동안 그것을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또 새로운 생각의 똬리가 형성되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술술 풀려나가곤 한다.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p. 84~85)"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생각을 해보자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생각이 잘 되지 않던 것이 걷기, 달리기, 요가, 심지어 생각을 비우겠다고 명상을 할 때 생각이 나래를 펴고 펼쳐진다. 얼마 전 왕복 17시간의 기차 여행에서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갔다 온 것처럼 정신적인 개운함을 맛보았다. 이번 기차는 예상 밖으로 많이 흔들려 책을 펼치니 멀미가 났다. 아이들의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많아서 무얼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대기 상태로 앉아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시선 닿는 대로 생각이 옮겨가거나 멈추었다가 다시 새로운 생각이 시작되는가 하면 아이들의 방해로 중단되거나 또는 이어져 조금 더 발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8시간 반 후에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피로가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정신적으로는 개운했다.
이 장의 마무리로 작가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주장을 빌려 방랑은 감수성의 폭넓은 변화를 불러오며 이 변화는 이방인이 내부인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게 한다고 말했다(p.86).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의 정확한 개념은 모르겠지만 감수성의 변화가 커진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3년이 넘게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나의 감수성은 내 인생 최고의 수준에 달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사춘기 소녀 때 보다도 더 많이 울고, 많이 웃는가 보다.
2. 동기
보바리 부인의 저자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늘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를 경멸하고 이국적인 것을 동경했다고 한다. 그는 사춘기 이후로 프랑스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에게 이국적인 것은 중국 풍, 이집트 풍이었다. 늘 갈망해오던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 아홉 달 간 머물렀다. 플로베르는 이집트의 모든 것에 푹 빠졌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지루함을 느낀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했다. "오, 주여, 내가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이 영원한 무기력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막상 떠날 때가 오자 괴로워했다. "내가 언제 다시 야자나무를 볼까? 내가 언제 다시 단봉낙타를 볼까?" 그리고는 죽는 순간까지 평생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나는 뉴질랜드에 오기 전 한국에서 품었던 뉴질랜드에 대한 환상과 실제로 마주하였을까? 얼마 전 한 상담사의 강연에서 저곳이 좋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싫어서 저곳에 간 사람들은 저곳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더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영혼이 있을 곳은 어딜까?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이국적인 것에 반하여 여행을 떠났다면, 독일의 자연 과학자였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탐험을 위해 남아메리카로 향했다. 그의 과학자로서의 식물학, 천문학, 비교 해부학 등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많은 과학적 탐구 자료들을 쏟아내게 했다. 그는 여행 내내 부지런한 자세로 「식물 지리론」이라는 책을 썼다. 호기심은 피로함과 귀찮음을 잊게 해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자발적 동기 부여의 핵심이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에서 동기와 호기심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되다니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의 힘이다.
3. 풍경
나는 서울과 같이 세계적으로도 큰 대도시에 속하는 도시에서 살다가 나라 시골 분위기의 나라, 뉴질랜드에서도 변방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자연을 예찬하고 시골살이를 통한 기쁨은 시로 표현해냈다. 막 뉴질랜드에 왔을 때 깨끗하고 인구 밀도가 적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한적함과 여유로움에 매력을 느꼈다. 몇 킬로미터만 나가도 웅장한 자연이 천지인 이 나라의 자연에 반해버렸었다. 저자는 에드먼드 버크를 비롯한 여러 지식인들의 숭고함이라는 표현에 대한 논증을 제시하고 있는데 내가 뉴질랜드 타우포의 후카 폭포를 보고 숭고함을 느꼈다는 것에 에드먼드 버크도 동의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조지프 에디슨이나 토머스 그레이처럼 너무도 웅장한 자연에 초자연적인 것을 떠올리게 된 적도 있었다. 무신론자(정확히는 불가지론자에 가깝겠다)인 나조차도 신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또한 나는 초자연의 힘의 존재를 이들이 보기에는 웅장하다고 할 수 없는 꽃들을 보면서도 느낀 적이 있다. 꽃을 확대라도 한 듯이 꽃의 구성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큰 꽃에서 작은 꽃까지 예외 없이 완벽한 좌우 대칭과 나름의 패턴이 가장 중심부터 가장자리까지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정확한 모습으로 생겨났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태어났다기보다는 자연을 초월한 그 어떤 존재가 정교한 설계도를 가지고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뒤죽박죽, 시끌벅적 인간들의 도시의 풍경과 너무나도 완벽해 보이는 자연의 풍경을 비교해보자면 분명 도시에 있을 때보다 자연과 함께 있을 때 신을 믿기가 쉽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자는 욥의 절망에 하나님이 답을 주듯이 물었던 질문들을 열거한다. 그 안에서 나는 '자연을 보아라. 너는 한갓 미물에 불과하다. 그러니 네가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자연을 만든 나를 믿어라.'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윌리엄 워즈워스도 자연을 예찬하고, 에드먼드 버크도 웅장한 자연에서 느끼는 숭고함이 주는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시골이 가지는 매력은 도시가 동시에 존재해주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웅장한 자연 앞에서 작아진 나를 느끼는 체험을 수도 없이 하면서 어느덧 도시인의 색을 잃어버린 나는 더불어 시골이 주는 즐거움에도 시큰둥해지고 말았다. 지금의 나는 도시 바람을 쐬고 싶다. 나는 한국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앓고 있지만 도시에 대한 그리움이 그 절반을 차지하는 것 같다. 이효리의 「서울」 뮤직비디오를 보고 펑펑 운 적도 있다. 도시에 찌들어 살면서 이따금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떠올리며 위안받고 싶지 영원히 시골에서만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이곳에 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4. 예술
이 장은 여행지의 풍경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다. 작가는 미술작품이 풍경을 보다 잘 이해하고 관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빈센트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여행지 프랑스 남부의 풍경을 감상하는 데 사용하여 새로운 눈으로 그 풍경을 즐겼다고 했다. 예술 관련 서적을 통해 반 고흐에 대해 익히 들어왔지만 여행 에세이에서 만난 반 고흐의 그림은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다시 한번 알랭 드 보통의 재주에 탄복할 뿐이다.
여행지를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을 안내하는 사람은 존 러스킨이다. 그는 데생의 일반화를 강조해왔다. 라틴어와 산수를 배우듯이 데생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데생 강의 마지막 날에 이런 말을 했다. "자,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데생을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두 사람이 클레어 시장에 걸어 들어간다고 해봅시다. 둘 가운데 하나는 반대편으로 나왔을 때도 들어갔을 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버터 파는 여자의 바구니 가장자리에 파슬리 한 조각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의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나왔습니다. 그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그 이미지들을 자신의 일에 반영시킬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와 같은 것을 보기 바랍니다." 미술에 어떠한 재능도 없는 나는 그림을 그려볼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러스킨의 말대로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생각만 해도 세심하게 관찰하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됐다. 이 세상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노력은 세상에 대한 통찰력도 길러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5. 귀환
여행 후 귀환했을 때 집에서 느끼는 고요함과 절망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라고 다른 글에 적어둔 바 있다. 여행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의 일상과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주기를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작다고 해도- 바란다. 즉 화려하게 귀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귀한 후 기다리는 또 다른 재미는 나의 집에 대해 새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에서 온다. 예컨대, 화장실과 텐트 간의 거리가 3분은 족히 걸려 왕복 6분이 걸리는 곳에서 캠핑을 하고 온 경우(특히 화장실에 데려다줘야 하는 어린아이와 함께)에는 소변이 마렵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부터 화장실에 가기까지의 시간이 찰나라는 점에서 새삼 우리 집의 크기가 작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그곳에 그냥 있었던 우리 집에 다른 시각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나의 집'으로 여행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한동안은 얻을 수 있다.
드 메스트르의 「나의 침실 여행」과 「나의 침실 야간 탐험」이라는 책에 흥미를 느꼈다. 이 책이 발간되고 80년 후에 니체도 이 책에 고무되어 자신의 방에서 많은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여행의 기술은 특별히 낯선 장소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즉, 자신의 방에서도 여행지에서의 발견 또는 깨달음 또는 여행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저자가 이 책, 여행 에세이를 마무리하는 것에 마지막으로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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