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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가지 생각

(독서후기)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다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꺼내 들었다. 순전히 심심해서였다.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가지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책에서 오래된 냄새가 풍겼다. 얼마나 오래된 책인가 하면, 무려 1985년에 인쇄된 책으로 가격도 2,500원 밖에 안 할 때의 책이다.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제가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리하여 이 책이 쓰인 때의 브라질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다. 조제 마우로 데 바스콘셀로스 (흔히 한국에서는 'J. M. de 바스콘셀로스'라고 부른다.)는 이 책을 1968년에 발표하였으며, 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그는 1920년에 태어났으므로 192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그 시기라고 하면 멀리 브라질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의 상황으로 비추어 보아도 이해할 만했다. 가정 폭력까지는 개인적인 가족사라고 치더라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교보다는 생업에 내몰렸던 그 시기였다. 지금의 한국도 그렇지만 빈부격차가 심했던 그 시기였다. 그때의 브라질도 마찬가지였던 가보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자면 말이다.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제제가 구두닦이를 해야만 했을 때, 너른 마당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던 상급생은 반짝이는 고급 구두를 신고 있었고, 제제가 성탄절임에도 불구하고 산타 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받기는커녕 밤도 개암나무 열매도 포도주도 먹지 못했을 때 그 상급생은 양복 세 벌, 동화책 한 질, 큰 색연필 한 타스, 장난감 한 세트를 받았다. 빈부격차를 제대로 목격해버린 제제는 고개를 숙이며 형의 말대로 '아기 예수는 부자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가족들은 제제에게 체벌을 내리는 이유를 지독한 개구쟁이이자 악마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가족들을 제제는 이해했다. 형이 제기한 '아기 예수는 부자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렇게 답한다. 랄라 누나는 좀 아프게 때리기는 하지만, 좋다고 말하며 언젠가는 나비 넥타이를 만들어줄 거라 기대했고, 어머니는 자신을 때릴 때도 불쌍하게 여겨서 살살 때리시니까 좋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운이 없는 분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제제가 그러므로 우리 식구들은 모두 착하다고 결론 내리자 제제의 형은 그러므로 '아기 예수는 부자만을 좋아한다고 결론 내리며 눈물을 흘렸다. 

 

 제제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어머니 이름을 말하는 장면이 있다. "에스떼화니아 삐나제 데 바스콘셀로스입니다." 삐나제는 인디언의 이름을 나타낸다고 한다. 남미의 대부분의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였으므로 이주해 온 백인들과 그 백인들이 노예로 데려왔던 흑인들과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과 같이 브라질 역시 포르투갈의 식민지로서 포르투갈 등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의 인종이 브라질 인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애초에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브라질 인디언은 현재 0.4%에 불과하다고 한다. 제제는 포르투갈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의 혼혈인이며, 후에 제제와 각별한 사이가 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도 포르투갈인 (제제는 '뽀르뚜가 아저씨'라고 불렀다.)이었다.  

 

 그 뽀르뚜가 아저씨 말고도 제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은 많았다. 퇴직자 에드문드는 제제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아저씨나 제제의 담임 선생님, 세실리아 빠임 같은 분 말이다. 제제의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는 진지냐 할머니나 노래 책을 팔던 아리오발도 씨도 제제에게 친절했다. 세실리아 선생님은 제제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것을 마음 아파하며 도시락을 사 먹을 돈을 주곤 했고, 제제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또 다른 아이에게 그 기회를 양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렸다. 제제 스스로도 자신이 악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우리들은 다 알고 있다. 제제는 악마가 아니라 그저 어린아이 일 뿐이라는 것을. 제제의 짓궂은 장난기에 또 발동이 걸렸다. 일명 '박쥐 놀이'인데 운명의 포르투갈 사람을 만나게 한 사건이다. 둘은 그 후 나이 차를 거스르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또 매를 맞고 퉁퉁 부은 얼굴로 뽀르뚜가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아이였어요. (중략) 제가 나쁘다는 건 저도 잘 알아요. 연세가 많으셔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아버지가 얼마나 괴로워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엄마는 늘 실 테를 등에 메고 다니셔서 어깨에는 못이 박혀 있어요. 랄라 누나는 공부도 잘했는데 지금은 공장 직공이 돼 버렸어요. 이런 일들이 모두 아버지에겐 속상하셨을 거예요.(후략)" 이 대사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어서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어머니의 고생, 누나의 희생, 아버지의 심적 고통,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있는 제제의 슬픔이 무겁게 나를 눌렀다.   

 

 뭐니 뭐니 해도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하이라이트는 제제의 나무이자 라임오렌지 나무인 밍깅뇨이다. 애칭은 슈르르까. 형편이 더욱 나빠져 이사를 가게 된 곳에 있던 여러 그루의 나무들 중 어린 제제에게 남겨진 한 그루의 작은 나무였다. 처음에 제제는 볼품없다고 싫다고 하였으나 제제에게 말을 걸어오는 나무를 이제는 다른 나무와 바꾸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제제를 악마라고 손가락질하는 동안에도 밍깅뇨는 제제의 쉼터가 되어 주었다. 밍깅뇨는 제제가 동생과 즐겨하던 '동물원 놀이'와 같은 상상놀이 같은 것이다. 동심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다는 상상놀이는 제제가 유년시절을 마무리하게 되면서 더 이상 밍깅뇨는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서 끝이 났다. 동생이 "동물원에 가고 싶어. 그리고 유럽 여행을 갔다 와서 아마존의 밀림을 가보고 또 밍깅뇨하고도 놀고 싶어."라고 말했으나 제제는 '믿지 않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제제는 철이 들었지만 기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리운 뽀르뚜가 아저씨에게 쓰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책을 덮고 한참을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일까?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서 가혹한 상실일까?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말도 떠올라 며칠 동안 이 화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제제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나'는 '제제'였지만 글쓴이가 '제제'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바스콘셀로스가 어린 시절의 바스콘셀로스를 불쌍히 여기고 있었음이라. 이 책을 통해 1920년대의 브라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책의 절반 이상이 낱장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 책을 보내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전에 이 후기를 쓸 수 있어서 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