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여겨 볼만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붙인 태그들이다. 너무도 흥미로웠던 유길준의 「서유견문」(한양 출판, 1995년 출판)을 낱낱이 들여다보자.
1.
1889년 즈음 전 세계 인구는 약 13억 5,100만 명이었다. 2021년 6월 현재 약 78억 7,496만 명이라고 하니 132년만에 65억 명이 증가하였다. 아래 그래프에 따르면 1950년 이후에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 아래 작성된 표를 보면 인구 10억 명이 증가하는 데 걸린 기간이 점점 짧아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연수(*) | 연도 | 인구 수(십억 명) |
1889 | 1 | |
38 | 1927 | 2 |
33 | 1960 | 3 |
14 | 1974 | 4 |
13 | 1987 | 5 |
12 | 1999 | 6 |
12 | 2011 | 7 |
10 | 2021 | 8 |
(*) 인구 10억 명이 증가하는 데 걸린 연수.
2.
제3편 '나라의 권리'에서 유길준은 커다란 나라도 한 나라고, 작은 나라도 한 나라다. 나라 위에 나라가 없고, 나래 아래에도 또한 나라가 없다고 했다. 다른 나라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기 나라의 권리도 스스로 파괴하는 결과가 된다고도 전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나 어째서 유길준은 일본의 침략에는 동조 또는 방조했을까? 심지어 아래와 같이 예시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일본과 체결된 각종 조약은 무효다.
3.
제3편 '국민의 교육'에서 유길준은 새로 발명된 공업이 세상에 퍼지면서 유행이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도 또한 시대의 변천에 순응하여 자기의 직업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학업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배우지 못하고 기술도 없는 사람이 자기의 어리석은 생각을 고집하면 군색하고 곤란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사상 초유의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에 따라 대비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하는 통에 겁을 집어삼키고 있지만 유길준이 살았던 시대에도 시대 변화는 있었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은 배움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또한 유길준은 가난한 집안의 자제들이 학문의 성과를 통해 세상을 발전시킨 예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부형의 도움을 얻지 못하더라도 학문을 할 수 있도록 대학교를 세워 국민의 세금으로라도 그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학문 중에도 도덕 교육, 재예 교육, 공업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공업 교육을 강조한 데는 인간 세상의 살 길을 이뤄 나가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4.
제4편 '국민의 권리'에서 유길준은 사람은 평등하다고 보았다. 사람 위에도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도 사람이 없다. 천자도 사람이고, 서민도 또한 사람인 것이다.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신분의 귀천이나 고저가 제도로는 남아 있었던 것(인식은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음. 역사적 증거는 없고 사극 드라마를 통해 형성된 개인적인 시각임)으로 보이는데 유길준은 사람답게 살 권리는 평등하게 있되 지위(세습적인 신분이 아님)에 따른 권리에는 차등이 있으므로 밖으로부터의 세력을 잘 이용하여 자신의 지위에 따른 권리를 누리라고 하고 있다.
5.
제4편 '인간 세상의 경쟁'에서 유길준은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야 자신의 부귀 영달을 이루던 옛날 방법은 법률 제도가 정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개화된 사회에서는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건강하게 경쟁한다고 말하며 인간사 전체가 경쟁이라는 한 가지 길을 따라 왔다고 주장하며 경쟁은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습관이라고 칭송하였다. 다만, 유길준이 말하는 경쟁이란 선의의 경쟁이다. 과거의 나라면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온 후 경쟁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에 비해 발전하지 못한 이유로 경쟁하지 않는 사회를 첫 번째로 뽑고 싶다. 경쟁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스스로 일어나기 힘들다. 한국인인 나의 눈에는 대다수의 뉴질랜드 인에게서 내일 더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그것이 인간답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 후로 한국인들의 경쟁심이 지극히 인간적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6.
제5편 '정부의 시초'에서 유길준은 어떤 이의 말을 다음과 같이 옮겼다. "국민이 많으면 그 가운데는 학식과 덕망이 넉넉히 한 나라를 다스릴만한 자가 반드시 있으므로, 미국같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법도 있다. 서양 학자 가운데는 이 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지만, 이는 사세에 미달하고 풍속에도 어두워 어린아이의 우스갯소리에도 미치지 못할뿐더러, 정부를 시작한 유래가 피차간에 차이가 많다." 대대손손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곳에서 대통령제는 터무니없어 보였나 보다. 이에 유길준은 비록 여러 사람의 의논이 공평하다고 하여, 정치에 관심도 별로 없는 국민들을 다 동등하게 여기고 정부의 권력을 함께 잡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그렇지만 나라에서 정부를 설치하는 근본 의도는 국민을 위한 것이고, 임금이 정부를 명령하는 커다란 뜻도 국민을 위해서이다라고 반박하면서 전 세계에 존재하는 정부의 종류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1) 임금이 마음대로 하는 정치 체제, 2) 임금이 명령하는 정치 체제, 3) 귀족이 주장하는 정치 체제, 4) 임금과 국민이 함께 다스리는 정치 체제, 5) 국민들이 함께 다스리는 정치 체제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각 나라의 1889년의 정치 체제를 분류하였다.
이러한 정리와 더불어 유길준이 덧붙인 말이 유럽과 아메리카 두 주에 있는 여러 나라가 아시아주 여러 나라에 비하여 백 배나 부강하다는 사실이다. 유길준은 그 차이가 국민들의 자질이 아니라 정부의 제도와 규범에서 온다고 평가하였다. 즉, 민주주의 체제가 나라를 부유하고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여 조선의 이상향도 민주주의임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7.
제6편 정부의 직분 중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에 대하여 여러 지면이 할애되고 있다. 다 설명할 수는 없으나 영국의 제도에 대하여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적금치소'와 '상조계'가 그 예이다. '적금치소'는 일을 하는 소시민의 목돈 마련을 위하여 품삯에서 일정 금액을 반강제적으로 적립하여 후에 이자와 함께 수령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오늘날의 퇴직연금제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상조계'는 뜻밖의 불행한 일을 당할 때를 대비하여 계원들이 미리 조금씩 부담을 하고 불행한 일을 당한 계원을 대신하여 부담해주는 제도였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계 모임이라든가 상조회사에 해당되겠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공적 제도를 마련하거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사적 제도를 지원하고 감독하는 것도 정부의 직분이라고 유길준은 생각하였다.
또한 세금을 적절하게 거두는 것도 정부의 직분이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날마다 요긴하게 쓰는 물품에는 세금을 매기지 말고, 사치스런 물품이라든가 즐기는 데 쓰이는 물품에서 무거운 세금을 거두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지금의 특별소비세나 부가가치세 면세제도에 해당이 된다. 세금을 거두는 이상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후술 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유길준은 정부의 직분 편에서 공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공원을 만드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빈자든지 부자든지 저마다 영위하는 사업에 분주하여 정신이 피곤하고 기력이 나른할 때에라도, 공원 안에 들어와 한가롭게 거닐면서 화초 향기를 맡거나, 푸른 나무 그늘을 깔고 앉아 청명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면, 가슴속이 깨끗해지고 심신이 상쾌해져 고달픈 흔적이 다 씻겨 없어진다. 이런 곳이 있으므로써 우리 위생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처럼 많은 돈을 들여서 대중의 즐거움에 이바지하는 일이 실상은 부유한 기상을 빈한한 자들과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유길준은 생각이 많이 깨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 편에서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독점에 대한 인식이었다. 유길준은 독점은 특정 회사 또는 특정인에게 막대한 이익을 몰아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독점을 규제하는 것이 정부의 직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전기와 같이 특별한 분야에 대해서 만큼은 독점을 허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제도가 그러한 것으로 보아 유길준은 시대를 앞서 간 사람임에 분명하고 그 것은 세계 제도와 문물을 두루 접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8.
제8편에서 유길준은 정부에서 국채를 모집하여 사용하는 까닭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 중 국채의 역기능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집트의 예를 들었다. 이집트는 국채 발행 후 상환일을 지키지 못한 결과로 프랑스와 영국에게 차례로 자치권을 빼앗기게 되었다며 정부는 국채의 발행에 신중하여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세계사를 잘 알지 못해 이집트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니 실제로 그러했음을 알 수 있었다.
1517년에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어 이스탄불(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다스리는 속주로 되돌아갔다. 맘루크 왕조 말기에 시작된 경제의 쇠퇴는 계속되었고, 그와 함께 이집트 문명도 쇠퇴했다. 1798년 프랑스군의 침략은 불과 몇 년 동안이었지만 이집트를 유럽의 정치무대로 끌어들이는 데 충분했다.
프랑스군이 떠난 뒤 이집트는 무하마드 알리의 수중에 들어갔다. 알바니아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알리는 오스만을 명목상의 종주국으로 하는 하나의 왕조와 제국을 일으켰다.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치부(致富)와 팽창주의 정책으로 인해 이집트는 영국에 막대한 빚을 졌고, 영국은 1882년 내란의 와중에 기회를 틈타 이집트를 점령했다(대영제국).
다음 백과
9.
제10편 법률의 공도 편에서 정부는 은행이 은행표나 지폐를 무분별하게 발행하는 것을 규제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지금의 지급준비금 제도와 같다. 우리나라의 최초 은행인 한성은행이 1897년에 설립되었고, 이 책이 1889년에 나왔으니 우리나라에 은행이 생기기 전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은행의 기능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0.
제11편 생계를 구하는 방법 편은 가장 흥미로웠다. 생계를 구하는 방법을 논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였는데 주옥같아 그대로 옮긴다.
생업에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결론 내리며 서양의 여러 생업들을 예시하기 시작한다. 관리(공무원), 교사, 작가, 의원(의사), 변호사, 항해사, 발명가의 사회적 순기능과 생업으로서 훌륭한 점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신문이나 책을 인쇄하는 자, 상점의 점원이나 농가의 머슴, 가게를 차린 자와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 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어떠한 사물에도 관여하지 않고 편안히 앉아서, 생계를 이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자는 어리석다는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람이 생계를 구하는 것이지, 생계가 사람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뼈 있는 말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저마다 생계를 구하여 직업이 있으니, 이 사람이 하는 일을 저 사람은 하지 않고, 저 사람이 하는 일은 이 사람이 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 말은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니며 유망하다는 어떤 직업을 모두가 좇을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내 일을 하고, 너는 너 일을 하면 된다'라고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얼마 전 친구가 추천해 준 동영상이 떠오른다(https://youtu.be/yYtvA1iXY3M).
11.
제12편 애국하는 충성 편에서 유길준은 외국 사람을 대할 때에는 조선 사람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행실을 단정히 하고 몸가짐을 의젓하게 하여야 한다고 했다. 공적인 이름을 가지고 공적인 의무가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내가 애국심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외국에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외국에 나오고 보니 실제로 '나'를 그들은 '한국인'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대표성이라도 가진 양 행동과 태도에 대해 조심성이 생기고 한국과 관련된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우쭐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었다.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단어에 울컥해보기도 했었다. 과연 유길준 본인도 일본에서, 미국에서, 유럽에서 그러했는지 궁금하다.
제12편에는 어린이를 양육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는데 어린이를 양육하는 데 어려운 점을 조목조목 들고 있다. "젖 먹이기, 잠재우기, 운동시키기와 옷 입히기, 대소변이다. 어려운 일이 이밖에도 얼마든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은 어린아이의 성질을 잘 맞추어 거슬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각 조목에 대하여 상세히 후술 한다. 어린아이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방법에 대하여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한 데 대해 한번 더 놀랐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12.
제13편 서양 군제의 내력 편에서 총의 발명과 사용 역사를 언급하면서 총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할 방편으로 처음으로 봉급을 주게 된 병사를 soldier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솔져라는 단어 자체가 소금, 즉 봉급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부분이 흥미로워 조금 더 조사해보니 정말 그랬다. salarium이라는 라틴어는 소금을 뜻하며, 로마 군인에게 봉급으로 소금을 지급했다고 해서 soldier라는 단어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제13편에는 유럽 종교의 내력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신교와 구교에 대한 견해가 나와 있다. 나는 종교가 없으나 특정 종교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유길준의 견해가 꽤나 흥미로워 일부를 싣는다.
또한 서양의 학문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19가지의 학문을 열거하여 간략하게나마 설명하고 있다. 그 끝에 말하기를 "앞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학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명목이 있어 일일이 예를 들 수가 없다. 세상 일은 날마다 달라지고 달마다 새로워져서, 그 갈래가 나올수록 많아지고 교력의 재주라도 측정할 수가 없다. 사람은 한 개 혈육을 지닌 몸이라서, 천만 가지 무궁한 일을 아득한 바다의 좁쌀 한 알 같은 재주로 다 겸행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각 학문 가운데 한 가지만을 전공하여, 중도에 폐지하거나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는 아쉬움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다른 학문의 대강을 겸행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지식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경우뿐이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자는 다른 학문을 약간 이수하여도 정치학사의 칭호를 받게 되며, 법률학이나 기계학도 다른 학문을 겸행하는 경우가 간혹 있더라도 그 전공한 학문의 학사라고 칭한다. (중략)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끼리 교제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모자라는 점을 서로 도와주고 편리한 것은 서로 바꾸는 법인데, 여러 학문의 학자들은 저마다 한 가지 전공을 닦아서 세계의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중략) 나라의 커다란 근본은 실용성에 있고, 국민의 가장 커다란 실용성은 공부하는 습성에 있다." 유길준은 한 가지 학문에 통달하기를 권하며, 각기 다른 학문을 통달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바랐다. 유길준의 유토피아는 내 마음에 드는 부분이 참 많다고 느꼈다. 요즘 핫한 키워드인 '폴리매쓰'가 떠오르기도 했다.
13.
제14편 상인의 대도 편에서는 조선의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여 안타까워했던 사례 두 가지를 들었다. 내가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두 사례에 담긴 의의라기보다는 그 사례들을 통해 당시 시대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유길준은 제14편 개화의 등급 편에서 개화의 등급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아니 네 가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유길준의 말을 그대로 또는 중략하여 다음과 같이 옮겨 본다.
- 지나친 자는 아무런 분별도 없이 외국의 것이라면 모두 다 좋다고 생각하고, 자기 나라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외국 모습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폐단까지도 있다. 이들을 개화당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어찌 개화당이랴. 사실은 개화의 죄인이다.
- 모자라는 자는 완고한 성품으로 사물을 분변치 못하여, 외국 사람이면 모두 오랑캐라 하고, 외국 물건이면 모두 쓸데없는 물건이라 하며, 외국 문자는 천주학이라고 하여 가까이하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만이 천하 제일이라고 여기며, 심지어는 피해 사는 자까지도 있다. 이들을 수구당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어찌 수구당이랴. 사실은 개화의 원수다.
- 입에는 외국 담배를 물고, 가슴에는 외국 시계를 차며, 소파나 의자에 걸터앉아서 외국 풍속을 이야기하거나 외국말을 얼마쯤 지껄이는 자가 어찌 개화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개화의 죄인도 아니고, 개화의 원수도 아니다.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 속에 주견도 없는 한낱 개화의 병신이다.
- 진정한 개화인은 중용을 지켜서 지나친 자를 조절하고 모자라는 자를 권면하여, 남의 장기를 취하고 자기의 훌륭한 것을 지켜서, 처지와 시세에 순응한 뒤에 나라를 보전하여 개화의 커다란 공을 거둬야 한다.
유길준은 후대에 온건 개화파로 분류되고 있다. 이어 마지막 두 단락은 100% 동의하는 마음에 전문을 첨부한다.
14.
제16편에서는 서양의 옷, 음식, 집의 제도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그 소개 글을 읽고 있자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 당시 조선인의 눈에는 그것들이 얼마나 특이하고 신기하게 보였을까 싶었다. 얼마나 자세하게 묘사하였는지 모른다. "등거리(조끼)는 홑적삼 위에 입는데 저고리나 바지와 같은 색으로 만들고, 가슴은 단추로 합친다. 등 뒤에는 끈이 있어 품을 크고 작게 조절한다." "냅킨은 옷깃 앞자락에 둘러서 입이나 손을 씻는 것이다." 또한 "아침에 먹는 싱싱한 과일은 사람에게 금이고, 점심에는 은이며, 저녁에는 납이다"라고 서양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었는데 유길준에 의해 소개된 서양 의사의 말이었던가 보다.
서양 집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면서 침실을 묘사하기를 "침실에는 사철 평상을 쓰는데 상에다 용수철을 깔았고, 그 위에 짚이나 털로 된 요를 깔았다."라고 침대에 대해 썼을 것인데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했다.
흥미롭게도 서양인의 놀고 즐기는 모습도 묘사하고 있다. 무도회에 대한 설명을 "우리나라 풍속에 의해 본다면 남녀의 분별이 없다고 책망할 자도 있으며, 정나라나 위나라의 음란한 풍속이라고 비난할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풍습이 어떠하든지 그 사실적인 모습만을 기록할 뿐이지 그 밖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시작하면서 자세하게도 묘사하였다. 그리고 서커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도 괴상한 자가 있는데, 수염 난 여자, 머리카락이 키보다 더 긴 자, 뱃가죽이 온몸을 뒤덮은 남자, 손이 없어서 발로 글씨를 쓰는 자, 온몸에 털 난 아이, 얼굴만 크고 키가 작은 아이 등이다." 영화 「The Greatest Show」가 떠올라서 흠칫 놀랐다.
15.
제18편에서는 서양의 문물 여러 가지를 안내하고 있다. 증기 기관, 전화기 등에 대하여 기술적으로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과학 기술 문외한인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여러 번 읽어야 했을 정도다. 또한 회사와 주식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으며 상당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글을 썼음이 느껴졌다. 유길준은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한다."라는 옛 경언을 들어 당시 조선에 회사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16.
제19편과 제20편은 부록처럼 서양의 여러 대도시에 대한 자세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으로 책 「서유견문」은 마무리된다. 각 도시에 대한 묘사가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예를 들면, 1800년대의 런던을 "세상에서 런던처럼 부유한 곳도 없고, 런던처럼 가난한 곳도 없다."라고 한 사람들의 말을 옮기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여러 소설들이 떠올랐다. 베를린을 "거리는 잘 정돈되고 깨끗한데, 곧고 넓은 길이 네 가닥이며, 사람과 마차가 오가는 길이 구별되어 있다. (중략)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맥주를 좋아하여 그 음주량이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월등히 많다."고 묘사하였다. 독일에 가보지도 않은 내가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 마드리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적지 않은데, 일일이 다 들 수가 없다."고 묘사하여 역시 스페인에 가보지도 않은 나도 가우디 건물 풍경이 담긴 사진엽서는 여러 장 가지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이상 인상 깊었던 부분만 표시했다가 글로 정리한 것인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나도 놀랐다. 이 정도면 책 전체를 꼭 읽어보라고 추천만 할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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