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을 읽던 중 저자가 추리물을 좋아한다고 밝혔을 때야 문득 나도 왕년에 추리소설과 티비 시리즈 추리물을 곧잘 봤다는 것이 기억났다. 중학생이 되도록 독서가 뭔지 몰랐던 내가 얇은 괴도 루팡 소설책을 나도 모르게 몰입하여 단 한두 시간 안에 읽어치워 댔다. 같은 반 짝꿍이 괴도 루팡 전집을 몇십 권이나 가지고 있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빌려서 읽을 수 있었다. 그 뒤 셜록 홈즈 시리즈, 대학생이 되어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에 파고들었다가 자연스레 시드니 셀던의 소설로 옮겨 갔었다. 그러다가 영국 BBC의 드라마 「제인 마플」의 할머니 탐정에게 푹 빠져서는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나서 어두운 침대 방에서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새벽을 맞았던 그 며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책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는 그동안 한 두 권씩 사 모았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뉴질랜드에 오면서 전부 처분하면서도 셜록 홈즈 전집 중 1권과 2권만큼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가져왔다는 것을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또 잊고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삿짐을 싸면서 이 책을 도로 가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 집어 들고 읽었다. 역시나 마치 처음 읽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지극히 망각하는 동물이기에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여기에 적기로 한 것이다.
셜록 홈즈 전집 1권 주홍색 연구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왓슨 박사가 '나'로 서술된다. 1권이기 때문에 왓슨 박사가 셜록 홈즈와 처음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왓슨 박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셜록 홈즈는 매우 기이하고 흥미롭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는 셜록 홈즈의 매우 독특하면서도 천재적인 추리 기법이 왓슨의 시선으로 서술되었고, 2부는 사건과 관련된 인물의 과거사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서술된다. 즉 이 부분은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변경된다. 2부의 마지막 장 '의학박사 존 왓슨의 회상 계속'에서 다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돌아오며 '주홍색 연구'의 출간을 시사하며 끝이 나는데 2권 「네 사람의 서명」 초입에 출간했음을 확인하는 문장이 나온다.
내가 이 책에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몰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로 정식 명칭이 바뀌었다.)라는 종교에 대해서다. 셜록과 왓슨은 영국 런던의 한 하숙집에서 동거하고 있었고, 사건의 발생지 역시 런던이었으나 사건의 배경은 미국에서 창시된 몰몬교가 다른 지역 주민들과의 충돌을 피해 1847년 당시 멕시코령이었던 유타주로 대이동 했던 때로부터 시작된다. 몰몬교의 결혼 제도로 인하여 종교적 갈등을 겪었던 한 사나이의 복수극이었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덕분에 나는 몰몬교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민감한 문제이므로 더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다만 아서 코난 도일이 다른 나라의 종교와 역사를 배경으로 사용한 것이 놀랍다. 1859년에 태어나 1930년에 사망한 그에게 미국의 몰몬교 이야기는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셜록 홈즈 전집 2권 네 사람의 서명
2권 「네 사람의 서명」도 사건 자체는 런던에서 발생하지만 그 배경은 1857년에서 1858년에 인도에서 있었던 세포이 항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서 코난 도일은 범인의 입을 빌려 세포이 항쟁을 두고 폭동이니, 반란이니, 반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나는 강한 거부감이 들어 세포이 항쟁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세포이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로 용병이라는 뜻이다. 영국이 인도를 점령한 방식이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간접적으로 경제적 통치 범위를 점차 늘리고 있었고,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었는데 동인도 회사에서 고용한 인도인 병사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용병, 세포이었고 그들이 동인도회사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인 것이다. 당시 영국에게는 반란이고, 폭동으로 보였겠지만 영국은 침략자이기 때문에 독립운동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또 그저 민족적 독립운동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 종교적으로, 지리적으로 얽히고 말았다. 인도는 종교의 나라로 알려진 만큼 종교적인 색채가 아주 강한 나라인데 동인도 회사에 고용되어 있었던 세포이들의 종교가 주로 힌두교와 이슬람교였다고 한다. 이들 종교와 대치하고 있었던 시크교(펀자브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시크교도이며 시크교 세례를 받으면 남자는 싱, Singh이라는 성을 갖게 된다. 내가 만난 인도인들은 주로 펀자브 사람들이었는데 정말로 남자들의 성이 모두 '싱'이었다. 나는 그저 김, 이, 박처럼 흔한 성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는 동인도회사를 지지하였다고 한다(한국으로 치면 친일파였던 것도 같고...). 따라서 독립 운동이면서도 종교 전쟁이기도 하다.
결국 영국군의 승리로 세포이 항쟁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 결과 대영제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한 간접 통치 방식을 접고 인도를 영국령으로 발령하여 직접 통치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된다. 인도는 그로부터 90년 후에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대한 독립을 꿈꿨던 김구 선생이나 이승만, 김일성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꿈꾸는 바람에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우리의 역사를 연상케 했다. 뉴질랜드 영국의 통치를 받았고, 여기 뉴질랜드의 이민자 중에 인도인이 가장 많다. 내가 만난 인도인들은 영어도 유창할 뿐 아니라 뉴질랜드 문화에 이질감이 없어 보였다. 억양은 인도인 억양 일지 몰라도 영국식 영어의 어휘나 표현에 익숙하고 영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인 럭비나 크리켓 역시 친숙하게 느끼는 듯했다. 나에게는 모두 생소한 것들이었다. 직접 통치가 90년이나 지속되었으니 영국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을지 다만 짐작할 뿐이다.
나의 호기심은 힌두교와 시크교가 어떤 종교인지로 확장되었다. 또 다른 지적 호기심을 불러 오는 추리 소설이었고, 뜻밖에도 그 분야가 역사였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셜록 홈즈가 사건이 없는 평온한 날의 무료함을 코카인으로 버티는 와중에 '나'인 왓슨 박사의 로맨스는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흥미로운 반전은 덤으로 따라온다. 아무래도 나의 추리소설 사랑은 식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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