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잠시만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쓰는 돈이 많아질수록 영주권을 가져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취직, 취직. 오로지 취직만이 방법이었다. 그것으로부터의 좌절 후에 여기저기, 이것 저것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 블로그도 시작은 뉴질랜드였더랬다. 비슷한 시기에 브런치 작가 되기 신청을 위해 「안녕, 뉴질랜드」(https://brunch.co.kr/brunchbook/hibyenz)라는 에세이를 쓰고 있었고, 두 번의 실패 후 세 번째에서야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실패 투성이었던 그 시절 브런치 작가 되기에서도 실패했을 때는 자존감이 바닥을 쳤었다. 그때 이미 나는 '하이, 뉴질랜드' 했던 부푼 기대에서 '바이, 뉴질랜드' 하고 미리 작별을 고했던 것 같다.
한 달 전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그날은 뉴질랜드 이민성이 코로나 구제 목적으로 2년 이상 거주자에게 영주권을 발급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들뜬 분위기 틈에서 잠시 아주 약간 흔들렸지만 우리 부부는 이성을 되찾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깨어 남의 꿈에서 깨어났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이 일회성의 누구나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영주권은 취업 여부나 직업의 종류나 급여의 수준을 가리지 않고 2년 이상 거주한 적법한 비자 소지자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며 12월과 내년 3월(12월 신청 가능 자격과 구분되어 적용됨)에 신청하여 1년 이내에 영주권이 사실상 자동 발급되는, 앞으로 다시는 없을 파격적인 이민 정책이 될 것이다. 이 영주권을 내년 3월에 신청하기 위해서 우리는 내년 2월에 만료되는 비자를 연장하여야 한다. 또한 영주권이 발급되기 전후로 한국에 다녀올 수 없을 것이다(뉴질랜드는 국경을 폐쇄하여 자국민의 입국만을 허용하고 있다). 비자를 신청할 때 참으로 치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사무쳐서 향수병이 깊어진 지 오래라 이 영주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런 것들을 감내할 만큼의 가치나 의미를 뉴질랜드 영주권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작년 초 첫 번째 락다운을 시작으로 2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코로나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은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뉴질랜드를 향한 불신의 씨앗이 되었다. 코로나 관련해서 발표되는 정책은 유치해서 이제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동안 느껴왔던 비합리적인 제도나 양극화되어 있는 사회상이 그에 더해져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온통 불만 투성이다. 집에 갇혀 있어서 얻게 된 병이라고 하고 싶다. 2월 만기 꽉꽉 채워 마지막 순간까지 뉴질랜드를 다 누리고 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아이들 학교도 보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여기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 조기 귀국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긋지긋해진 기분마저 들어버린 뉴질랜드와 헤어질 때가 되었나 보다.
남편은 지금의 한국인 사장님과 일하기 전, 우리가 뉴질랜드에 오자마자 이웃하여 알고 지냈던 뉴질랜드 인 사장님으로부터 하우스 페인팅을 배워 일을 시작했었다. 3년 정도를 함께 일하다가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어서 이직을 한 것인데 이주 전,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통해 그 보스가 다시 남편과 함께 일하고 싶다며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해왔다. 떠나려고 마음먹은 마당에 들려온 두 가지 희보는 나와 남편의 기분을 좋게 하였다. 가지 말라고 붙잡아 주는 것이 그래도 잘 살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제 곧 이별할 좋았던 것 한 가득, 나빴던 것 한 가득(그런 점에서라면 한국에 있었어도 별 다를 바 없었을 테지만.)이었던 뉴질랜드에게 미리 작별을 고한다. 안녕,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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